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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슬퍼하며 말했다 "이제 너가 그럼 어떡해..?"

by 온호류



(전) 남편만 개선되면 결혼생활에 평화가 올 줄 알았던 내 생각은 나의 바보 같음과 오만함을 대변하는 생각 그 자체였다. 상담선생님도 우리의 싸움을 중재하며 얘기하신 적이 있다.


"똑같으니까 싸우는 거예요. 둘이 똑같아요. 둘 다 서로를 탓하는 게."


맞다. 돌아보면 나도 참 남편에게 잘못한 게 많다. 욕을 하고 화를 내는 등 그의 행동이 과격하고 분명해서 비난받기 쉬웠을 뿐 나도 한 성격하는 데다 남편을 긁는 줄도 모르고 저지른 만행들이 많았다.


남편이 나를 비난하면 나는 고대로 그를 비난했다. 내가 그 비난을 받지 않았으면 되는 건데, 똑같이 되받아쳤기 때문에 싸움이 커진거다.


결정적으로 요 몇 달간 나의 행동과 얼마 전 남편이 내게 한 일침으로 인해 나는 팔짱 끼고 남편을 바라볼 위치가 아니었음이 명백해졌다.




부부상담을 받으며 남편은 점점 더 좋아졌다. 통제되지 않던 야생마가 조금씩 길들여지고 있는 듯했다. 무엇이 잘못인지조차 몰랐던 남편이 그간 했던 행동이 잘못임을 인지하고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고, 그다음이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얼마 전 언니 부부가 대전집에 놀러 왔을 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언니가 남편에게 몇 번이고 했던 말이 있다.


"제부, 뭔가 여유가 생긴 거 같아!"


정말 그랬다. 내 기준엔 너무 사소하고 작은 것에 화내고 감정이 상했던 남편이었는데 요즘엔 사소한 다툼이 사라졌다. 화도 잘 내지 않고 웬만한 것은 웃어넘기곤 했다. 한 마디로 그가 달라진 것!


16번째 상담을 앞두고의 일이었다.


IMG_7498.jpg 언니부부와 브런치


남편은 오늘 상담에서도 눈물을 보였다. 남편이 언니에게 여유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자 상담선생님이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일이고 뿌듯해해야 한다며 진심 어린 격려와 칭찬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말했다.


"요즘은 모든 게 거슬리지 않아요. 마음을 바꿔 먹으니 제가 편하더라고요."

"이렇게 변화하기까지 참고 견뎌준 아내한테 너무 고맙고 미안해요."


지금까지 마음고생한 나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훔치는 남편, 그런데 어느샌가 나는 이런 남편을 못살게 굴며 구박하고 있었다.


상담의 효과가 빛을 발하는 이 순간, 꿈에 그리던 온화한 남편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이 선물 같은 순간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긴 거다.


얼마 전 다툼에서 남편이 정말적인 표정으로 슬퍼하며 말했다.


"이제 내가 안 그러니까 너가 그러면 어떡해…?"


아차 싶었다. 어떻게 만든 행복이고 평화인데 이렇게 가볍게 치부해 버리곤 스스로 망치고 있다니!


16번째 상담에서 상담 선생님도 이 얘길 듣더니 지금이 너무 중요한 시점이고, 남편이 중요한 지적을 한 거라고 했다. 실제로 상담을 받으며 그렇게 반대로 돌아가는 부부가 많다고. 가슴에 새기고 계속 그러면 안 된다고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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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조금만 못해줘도 "널 못 믿겠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 그래서 마음 돌렸는데 이게 뭐냐, 잘하겠다고 했으면서 지금 잘하고 있는 거냐" 남편을 닦달하고 꾸짖기 바빴다.


"너는 항상 그래", "난 지쳤어" 이런 부정적이고 김빠지는 얘기도 많이 했고 남편이 말을 끊고 자기 얘기를 할 때면 말 좀 끊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평소 내가 "뭐 이런 거 가지고 화를 내냐" 하면 남편은 "네가 뭔데 별거 아닌 거라고 단정 짓냐?"라며 싸움이 커지는 게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런 작고 사소한 것으로 남편을 몰아붙이고 통제하려 하고 있었다.


'보복심리'


내 안에 그런 유치하고 못된 마음이 들어앉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도 있지만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마음을 품는 사람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평가했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 행동은 보복심리로밖에 해석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만큼 참고, 이만큼 당했으니까 너도 이 정도는 받아줘야지. 너도 이 정도는 견뎌야지.' 이런 마음이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가득 차 있었다.


두 번째 상담 후 쌓여있던 게 폭발하면서 이혼을 결정했었지만 남편이 변해보겠다며 상담을 이어오게 된 거였다. 그래서 그간 쌓였던 것을 어느 정도는 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이 내게 했던 것과 똑같이 비난하고, 감정적으로 대하고, 남편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반성해야 하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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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변하지 않아요."


상담선생님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나는 상담 기간 동안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나 변했나? 남편이 진짜 변하나 안 변하나 팔짱 끼고 감시하듯 노려본 것 말고 무슨 노력을 했나? 안에 쌓인 서러운 감정들을 한데 뭉쳐 억울함과 분노로 폭발시킬 줄이나 알았지 상담을 받으며 성숙하고 지혜로운 모습을 보인 적이 있기나 한가?


"마음이 더 유연한 사람이 조금 더 양보하고 희생할 수밖에 없는 게 결혼생활이에요."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되받아 칠 수밖에 없고, 자기반성이나 깨달음을 얻기가 힘들어요."


남편은 각박한 세상을 살아오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고, 그에 비해 나는 상대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있는 상태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조금 더 양보하고 희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 그렇게 억울하게 생각할 일도 아닌데 스스로 부정적 감정을 지나치게 증폭시킨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었다.




자기가 안 그러니 내가 그러면 어떡하냐는 남편의 말을 듣고 부끄러워서, 그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내가 우니까 남편은 나를 보면서 왜 우냐고 같이 울먹였다. 그는 나를 너무 사랑했다. 내가 이렇게 못난 모습을 보여도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지? 미안해, 그렇게까지 안 말해도 됐는데…."라며 먼저 미안하다고 했다.


나의 짜증과 분노를 받아주고 이성적으로 이러면 안 된다고 짚어주는 남편, 지금의 온화한 남편이 있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억울하고 서러운 감정에 매몰되어 그새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 평온함을 위해 견뎌온 시간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18번째 상담에서 선생님이 알려주신 질문은 이럴 때 초심을 되찾게 해 줬다. 이 질문을 해보면 정답은 늘 분명해졌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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