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손을 꼭 잡고 두근두근 첫 상담을 시작했던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다가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당장 이혼 할 것처럼 서로를 할퀴다가도 껴안고 눈물의 화해를 하며 둘만의 치열한 시간을 보내왔다.
그리고 마지막 상담이 있던 2023년 2월. 그날의 모든 것이 아직도 선명하다.
너무 행복했고, 가슴이 벅차올랐고, 둘이 함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고 어떤 역경이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둘 다 참 많이 울었다.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대견했고, 남편을 깊이 사랑한다고 느꼈다.
이혼이라는 결말을 알고 보니 예쁘고 행복한 추억이었던 이 마지막 상담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선생님은 마지막 소감에 대해 물었고, 내가 대답했다.
"제자리걸음인 거 같고 지쳐서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될 때도 많았는데, 어떤 계기로 긍정의 스위치를 켜고 생각하니 모든 게 또 해볼 만하다고 생각됐어요. 사실 우리가 노력한다고 하긴 했지만 말뿐인 경우가 더 많았던 거 같고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데 너무 빠른 변화를 바랐던 거 아닌가 싶어요.
물을 끓이려면 온도를 100℃까지 올려야 하지만 99℃까지는 끓지 않는 것처럼 그 1℃를 견디는 힘이 필요했던 거 같아요. 상담을 받으면서도 여러 번 이혼 위기를 겪었고 '변화가 있긴 한 건가….'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마지막 1℃를 버텼더니 지금의 행복을 맛볼 수 있었어요."
선생님은 물 끓는 비유가 너무 좋다며 그 1도를 버틴 힘으로 앞으로의 역경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해 주셨다.
소감을 나눈 뒤 선생님이 뒤쪽에서 이 관절 인형을 꺼내오셨다. 인형이 우리 둘이라 생각하고 원하는 포즈를 지어보라 하셔서 두 나무인형이 포옹하는 포즈를 취했다.
그리곤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 하셨다. 내가 먼저 말했다.
"일 년 동안 정말 고생했어. 이런저런 힘든 일, 좋은 일이 많았고 위기도 있었는데 이 일 년은 앞으로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지금의 마음가짐, 남편에 대한 고마움, 믿음, 신뢰 잘 기억하고 있다가 또 힘든 시기가 올 때 이겨내는 힘으로 쓰자."
이번엔 남편 차례였다. 남편은 인형의 포즈를 바꿔도 되냐고 물어보더니 위의 사진처럼 바꿨다.
상담 선생님이 물었다.
"이게 무슨 포즈예요?"
"저희끼리만 하는 장난인데, 예전에 아내가 점프해서 배치기 한 게 너무 귀여워서 제가 계속 따라 했거든요. 그게 이어져가지고 맨날 둘이 이렇게 배치기 하면서 놀아요. 이러고 놀 때 너무 행복해요. 이렇게 우리만 아는 재미가 있고 이런 코드가 맞는 아내가 늘 옆에 있어서 참 즐겁고, 좋고, 고마워요."
남편이 살짝 부끄러운 듯 쑥스러워하면서 배치기 포즈를 설명하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상담선생님은 살짝 놀라시며 왜 우는지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복받치는 감정에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꽤 오래 둘의 따뜻한 시선 속에 눈물을 한 바가지 쏟고 나서야 겨우 훌쩍거리며 마음을 꺼낼 수 있었다.
"이렇게 순수하고 아이 같은 남편인데… 이렇게 사소하고 작은 거에 행복해하는데…, 일 년 동안 너무 매정하게 상처를 준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어요."
내 기대치만큼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넌 변할 수 없다며 무시했다. 그를 나쁜 사람처럼 얘기하고,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이혼하자고 했었다. 내 배치기 하는 모습도 이렇게 귀여워하며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는 고마운 남편인데, 내가 남편의 안 좋은 부분만 보려 한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기도 했다.
순간 깨달았다. 어찌 보면 남편의 폭력과 욕설은 그의 잘못이지만 평소 우리 싸움의 원인은 나의 이 태도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남편의 공감 능력, 언어능력, 표현력, 이해심 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남편이 더 많은 잘못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태도로 드러났을 테니 남편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리 없다. 그래서 남편은 늘 '맨날 나만 잘못했지', '억울해'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참 오만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직시하고 이런 나와 살아주는 남편한테 고마운 마음을 느끼기 시작하니 관계가 더 좋아진 거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문득 예전에 집단상담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뺨을 맞은 거 같던 그 말이 생각났다. 선생님의 지적처럼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만 고치면'이란 마음이 문제였던 걸지도 모른다.
남편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이어갔다.
"물론 아내가 기다려주고 도와준 것도 있지만, 일 년 동안 잘못을 인정하느라 부단히도 애썼다. 고생 많았다."
남편도 이 마지막 말을 하면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정말 고생 많았다고 미안했다고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면서 서로를 토닥였다.
이번엔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하셨다. 남편이 먼저 말했다.
"일 년 동안 고생 많았어. 앞으로 잘해보자, 포기 안 하고 긍정적일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 이런 고마움이 고마움을 낳고, 긍정이 긍정을 낳으니까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 같아."
"너도 일 년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난 여태껏 참아왔으니까 이제 좀 알아달라고 투정만 부린 거 같은데 너는 인정하고 바뀌느라 진짜 고생했어. 사람이 1년 안에 얼마나 바뀔 수 있겠어. 그런데도 내 성에 안 찬다고 상처 주는 말 하고, 이혼하자 그러고, 못되게 굴어서 너무 미안해. 그렇게 심하게 했는데도 나 못 잃는다고, 헤어질 수 없다고 끝까지 붙잡아줘서 고마워. 잘난 것도 없는 나인데 사랑해 주고, 예뻐해 주고, 귀여워해 줘서 고마워. 이제 우리 둘이 잘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아서 너무 든든하고 행복해. 앞으로 나도 잘할게 고맙고 사랑해."
선생님은 우리의 행복이 그대로 전해진다며. 너무 큰 행복이라 이런 행복이라면 자기는 1억을 줘도 안 바꿀 거라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둘이 상의해서 우리의 미래를 나타내는 사진 한 장을 골라보라고 했다. 예전에 한 번 고른 적 있는 사진들이었다.
남편은 이전에 골랐던 돌길 사진을 다시 골랐다. 우리들이 나아갈 디딤돌이 단단하게 잘 놓여 있어 가장 마음에 든다며.
나도 이전에 고른 계단 사진을 골랐다. 사진을 보면 둘이 한 계단씩 성장해 나가면서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기 때문에 얼마든 한계 없이 성장하고 더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하셔서 우린 상의 후에 내가 고른 계단 사진을 우리의 미래 상징으로 정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사진 고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하셨다. 너무 예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면서….
상담이 종료되고 우리는 부모가 될 준비를 시작했다.
남편의 문제 행동이 고쳐지기 전에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미뤄왔었는데, 내 오만한 생각이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고 남편이 달라질 거라는 믿음도 생겼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상담으로부터 1년 뒤인 2024년 3월, 우린 끝내 이혼하기로 합의했고 여러 흔들림이 있었지만 꽃 피는 4월에 난생처음 가정법원에 발을 디뎠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눈물의 마지막 상담을 뒤로하고 우리는 왜 결국 이혼을 해야만 했을까?
-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