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상담으로부터 7개월 뒤쯤 우린 마침내 아이를 가졌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생길 줄 알았던 아기천사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봤을 때 너무 기뻤고 당장 (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 남편의 목소리도 아이처럼 신나 하는 게 느껴졌다. 오죽하면 회사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조기 퇴근까지 했을까. 당장 달려와서 아빠가 된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나 보다. 그날 저녁 우린 함께 외식을 하고 과일을 잔뜩 사서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저녁, 그는 회사 후배가 선물해 줬다며 두 개의 책을 자랑하듯 보여줬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며 설레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우리 잘 키워보자며 꼭 안아줬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이는 7주 차에 유산되었다. 추석 전날 태아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고 연휴가 끝난 뒤 아기집을 제거하는 시술을 하기로 예약했으나 죽은 태아는 내게 출산의 고통을 맛 보여 주고 싶었는지 연휴 기간 동안 자연배출 되었다. 그렇게 생전 잘 먹지도 않던 진통제를 몇 알씩 먹으며 배를 부여잡고 추석을 보냈다.
아기집이 배출된 지 이틀째 되던 날 극심했던 산통은 다행히 잦아들었고 진통제의 약효가 돌 때는 살만했다. 친정집 소파에 누워 웃으며 장난도 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TV를 봤다. 자정이 넘은 시각, 다들 자러 들어가고 남편이 같이 경태 산책을 갔다 와서 우리도 자자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얘기했다.
“당연히 나도 같이 가는 것처럼 말하네?"
“……."
남편은 잠깐 말이 없더니 이렇게 말하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 잘 거니까 산책은 너가 가."
나는 그렇게 거실에 홀로 남았다.
추석 내내 산통 때문에 움직이질 못하니 경태의 산책은 남편 혼자 갔다. 당시 진통제를 먹어서 괜찮았지만 정말 괜찮아진 상태는 아니어서 그렇게 말한 건데 어떤 부분에서 기분이 나쁜 건지 아리송했다.
진짜 잘 줄은 몰랐는데 30분쯤 지났을까,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고 마침 진통제 약효가 떨어지면서 슬슬 아랫배가 아파왔다. 나는 남편을 깨웠다.
"진짜 자면 어떡해~ 산책 내가 가? 나 약효 떨어져서 배 아픈데?"
"너가 가. 아프다고 안 죽어."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들은 게 맞는지 내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산해서 진통제를 먹고 있는 아내에게 할 소린 아닌 거 같았다.
선 넘는 남편의 발언에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나지막이 “나 너무 속상해” 하고 나와선 경태랑 산책 갈 준비를 했다. 그가 방에서 나왔지만 난 본 척도 안 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산책하고 있으니 남편이 걸어왔다. 우린 아무 말도 안 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산책 후 다시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남편은 방에 들어가서 바로 잤고 난 경태를 닦이고 조금 있다 잤다. 소파에서 자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그가 잠들고 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누워서 그의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오만가지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때 생각했다. 아무리 상담을 받아도 변하지 않는 게 있구나.
그건 바로 본성이었다.
화가 나지 않을 땐 한없이 착하고 순하지만 쉽게 기분 나빠지고, 가족에겐 화를 참지 않고, 기분이 상하면 심한 행동이나 말을 서슴지 않는 남편의 이중성, 즉 본성은 상담을 받기 전과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남편은 ‘당연히 네가 가야지’라는 나의 태도에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기분이 상했을 때 나는 “속상해”라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이지만 남편은 화를 내고, 피하고, 말하기 싫어했다.
아무리 상담에서 기분 나쁜 것은 쌓지 말고 바로바로 얘기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도 기분이 상하면 말이 부드럽게 안 나오고 퉁명스럽게 상처 주는 행동을 하는 게 남편의 본성이었다.
어찌 보면 내가 “안 죽어.”라는 그의 말에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남편과 아무 얘기도 하기 싫었던 것처럼 남편은 나의 사소한 말에서도 그 정도의 감정적 상처를 받는 건지도 모르겠다.
친정에서 나와 집으로 오는 길에 어제 너 말실수했다고 얘기하니 남편은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했다.
보통 기분이 풀리기 전까진 내가 먼저 잘못해서 자기의 감정을 상하게 했으니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는 태도를 고수한다. 그의 성격이 그러한데 속상해도 화내지 말고 바로 얘기해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었나 보다.
남편은 감정이 상하는 거에 취약한 사람인데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달래주지 않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이런 남편의 이중성을 더 이상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감정과 본능의 덩어리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 행동의 90%는 본능으로 행해진다. 기분이 좋을 때는 10%의 이성이 몸을 지배할 수 있지만 욱하는 순간 90%에 압도당한다. 본성이 드러나는 거다.
부부 상담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고, 방법론 적인 것을 가르쳐 주고, 둘이 자꾸 부딪히는 원인을 파악하거나 해결 방법이 있으면 제시해 주기도 한다. 또한 켜켜이 쌓인 오해를 풀거나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부정적 감정에 가려 보지 못했던 사랑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하지만 상담이 한 사람의 본성을 바꿔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상담 선생님은 10%의 이성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줄 수 있을 뿐 90%의 본능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담배를 끊은 사람은 끊은 게 아니라 평생 참는 거라는 말이 있다. 폭력성이 있던 사람도 상담을 받는다고 폭력성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참는 것일 뿐이다. 상담은 참는 방법을 알려주고, 언제 폭력성이 나오는지 분석함으로써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도와주는 거지 가장 중요한 것은 참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이다.
담배를 끊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금연을 결심했던 사람이 다시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폭력성을 없애고자 하는 본인의 마음이 순간의 욱하는 감정으로 사라지는 순간 언제든 폭력성은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상담은 아무 소용이 없는 걸까?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걸까?
그건 절대 아니다. 우리의 마지막 상담을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는 금방이라도 이혼할 것 같던 위기의 부부였는데 이렇게나 사랑이 넘치는 사이가 됐고 아이 또한 갖게 됐다.
하지만 상담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간과했기 때문에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