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3월, 큰 수술을 한 엄마의 수발을 들어주기 위해 나는 한 달간 친정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한 달 치 짐을 싣고 친정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말다툼이 있었고 (전) 남편은 화가 났다는 이유로 엄마를 보고 안부도 묻지 않은 채 쌩하니 대전집으로 돌아가버렸다. 1년간 노력하고 고생하며 다시 하나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 순간 우리는 너무나도 남이었다.
상담을 하며 울고 웃고 부둥켜안았던 시간들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은 속상함, 남편에 대한 실망감, 엄마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뒤섞여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웃음도 울음도 아니면서 허탈하면서도 냉소적인, 한편으론 툭 건들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듯한 표정으로 나는 한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결국 그날 밤 이혼을 결심했다. 엄마의 병간호 기간은 자연스럽게 이혼 전 별거 기간이 되었고 남편과 떨어져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았다. 부모님은 죄가 없었다. 부모님은 우리 사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니 늘 남편 편을 들며 나를 나무랐다. 일하고 요리까지 하느라 고생이 많다며 남편을 치켜세우기 바빴던 사위바라기 부모님이었다.
그런데 나로 인해 화가 난 것임에도 아무 상관없는 부모님까지 본체만체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돌아가 버렸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가능케 했다. 어떤 의미로 무섭기까지도 했다.
'화가 나면 내가 아닌 그 누구든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건가? 그럼 나중에 아이에게도…?'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얼마 전 두 번째 유산을 했는데 '유산되길 잘했다'라는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드디어 끝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상 행복한 미래는 불가능해 보였다.
1년 전 마지막 상담에서 우린 분명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서로임을 깨달은 상태였고, 상대방을 탓할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또한 통감하고 있었다.
더 배려하고 더 노력하자고 굳게 약속했다. 나는 감정적으로 취약한 남편을 더 헤아려 주고 남편의 말을 무조건 수용해 주기로, 남편은 속상한 게 있으면 쌓아놓지 않고 바로 얘기하고 화난다는 이유로 폭언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덧 상담을 받기 전으로 돌아가있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 전날 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살짝만 밟아도 바로 터질 준비를 하고 있는 지뢰처럼, 서로가 서로를 밟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부부관계 연구의 권위자인 존 가트맨이 부부관계의 핵심은 애정과 신뢰라고 했는데, 당시 우리에게 애정과 신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의 애정은 서로에게 잘해줄 때만 호의적인 얄팍한 정이었고 신뢰는 언제 있기라도 했었냐는 자취를 감춰 불신만이 가득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돼버린 걸까?
1년간의 노력으로 끈끈하다 못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아이까지 가졌던 우리 사이는 어쩌다 또다시 1년 만에 오래된 포스트잇 마냥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로워진 걸까?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우린 그냥 잊어버린 것뿐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그때의 감정, 서로에 대한 소중함, 미안함, 고마움. 이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지, 울면서 나눴던 다짐과 약속 모두, 살다 보니 기억에서 희미해진 것뿐이었다.
싸우고 또 서로를 할퀴며 그때의 좋은 기억은 묻혀버렸고 그 과정에서 쌓인 불만과 안 좋은 감정은 서로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을 만들어 갔다.
마지막 상담에서 했던 말과 다짐은 모두 진심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둘 다 거짓말쟁이가 돼버렸다. 상담에서 배우고 다짐했던 대부분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우리는 뇌의 기억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뇌는 기억하기 위한 기관이 아닌 잊기 위한 기관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루 평균 뇌가 받아들이는 정보량은 약 34GB이다. 하지만 실제로 인지하고 저장하는 건 극히 일부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10MB도 안될 거라고 한다. 수만 개의 정보를 마주하지만 단 몇 개만을 기억하고 나머지는 열심히 잊는다는 것이다.
이는 기억하는 일보단 잊는 일을 천 배쯤 더 많이 한다는 얘기고 잊어버리는 것을 훨씬 더 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억기관이 아닌 망각기관이라 해도 무방하달까?
그래서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자꾸 상기시키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우리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좋지 않다. 아무리 다짐하고 약속해 봤자 머지않아 잊혀진다. 우리 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잊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매일 반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부 십계명을 코팅해 냉장고와 식탁, 현관문에 붙여놓은 거 말고는 마지막 상담의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어떠한 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 꼭 껴안고 엉엉 울던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에 그런 장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지난 1년간 완전히 달라진 줄만 알았다.
상담을 받으며 사이가 좋아질 수 있던 것은 상담에서 얻는 배움 때문도 있었지만 2-3주마다 서로의 소중함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노력하기로 했는가에 대해 주기적으로 상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잊지 않기 위한 노력 없이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상담에서 깨달은 것들은 기억에서 지워졌고 우리의 결혼생활은 몸이 기억하는 방향을 따라 알게 모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더니 우린 도돌이표 같은 싸움을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상담을 통해 1년간 배웠으니 이제는 우리끼리 잘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상담선생님이 이끌어주지 않으니 우린 원래 그래왔던 것처럼 사이좋게 다시 진흙탕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미 진흙탕 싸움으로 더러워진 사람끼리는 아무리 서로를 닦으려 해 봤자 계속 더러워질 뿐이었다. 진흙이 묻지 않은 깨끗한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깨끗한 물로 둘을 씻어줄 사람 말이다.
도움을 받아 진흙탕에서 나왔다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다.
기억하는 것, 행동하는 것
이것이 상담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기억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상담에 들인 노력은 금방 시간 낭비로 전락할 수 있다. 진흙탕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계속 상기시키고 부지런히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지 않으면 어느 순간 진흙탕으로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상담이 끝난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남편과 함께 매일 두 가지를 함께 할 거 같다.
아침엔 필사, 저녁엔 이마고 대화법으로 대화 연습하기.
우리가 작성한 십계명을 매일 아침 종이에 적으면서 되뇌어도 좋고, 서로에게 고마운 점을 적은 리스트를 만들어 그것을 필사해도 좋고. 옆에 있는 배우자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인지 떠올릴 수 있는 글귀면 무엇이든 좋을 듯하다.
저녁에는 이마고 대화법 연습을 통해서 그날의 감정을 바로바로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거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가 자주 싸우게 되는 주요 원인이었던 남편의 불만과 화가 쌓이지 않게 도울 수 있을 거다.
이 두 가지가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중요한 것을 떠올릴 수 있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했어야 했는데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못 미더운 게 사람의 의지인데 덜컥 믿어버렸다.
인생 책 한 권 읽고 새로운 삶을 다짐한다고 삶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상담 1년 받는다고 그냥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반복해서 읽고 배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꾸준히 삶에 적용시켜야만 삶의 방향이 달라지듯 그렇게 치열하게 노력했어야 했다.
기억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금세 살던 대로 살게 된다.
문제가 보일 때 빨리 상담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운 것을 실천하고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담이 끝나는 순간 점차 처음 상담을 받던 그때로 돌아갈 수도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