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이런 식으로 미워할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아. 네가 이것을 받아들이니까 마음이 놓여. 내가 너한테 꺼지라고 말하면 너는 나한테 뭘 집어던지기는 하지만 떠나지는 않거든. 그게 안심이 돼.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주인공의 여자친구인 클로이가 한 말이다. 클로이였다면 나의 (전) 남편과 지지고 볶더라도 결혼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분노에 휩싸여 와인병을 던지긴 했어도 그녀를 떠나지 않음은 물론 헤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 그녀라면 안정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클로이가 아니었다. 평소에는 사랑 넘치는 남편이지만 화가 나면 다신 안 볼 사람처럼 과격한 언행을 보이는 그의 이중성을 나는 끝내 사랑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그를 이해해보려 했던 노력은 매번 허탕이었다. 나는 클로이처럼 그의 행동을 별거 아닌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폭언과 갑자기 돌변하는 태도는 죽었다 깨나도 내게는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였다.
이전 글에서 "상대방의 다름이 나의 도덕성이나 가치관에 크게 위배되면서 불편한 감정을 일으킬 때, 나를 슬프게 하거나 아프게 할 때 또는 그러한 다름을 갖고 있는 것 자체로 그가 싫어질 때, 그 다름은 맞춰갈 수 없는 다름, 즉 '틀림'에 가깝다."라고 했다.
어찌 보면 상담을 받기 전까지 3년이란 시간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받아들일 수 있는 다름과 없는 다름을 알아가는 단계였달까. 마침내 3년 간 나를 아프게 한 그의 행동은 맞추고 이해해야 할 다름이 아닌 '틀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러했다. 여태껏 남편이 했던 행동을 용서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뿐 앞으로의 행동까지 용서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부부상담은 마지막 희망이자 각오였다. 남편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내가 바뀜으로써 남편의 행동을 변화시킬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배우겠다는 각오. 그리고 이래도 변하지 않으면 이 관계를 끝내고 말겠다는 각오.
우리는 상담이 끝나고 일 년 뒤인 2024년에 이혼했고 이 과정에서 사랑으로 극복할 수 없는 다름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달리 보려 노력해 봐도 받아들일 수 없는 다름, 즉 '틀림'은 사랑의 불꽃을 꺼트리기에 충분히 힘이 세다는 것도. 사랑으로 얼마든 극복하고 맞춰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정확히 말하면 변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데 변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변할 수 있는 거였으면 30대 이전에 변했을 거고, 30대 이후로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바꿔야 하니 대체로 현상유지를 택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결혼하면 안 그러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사람의 본성이 가지는 본성을 간과하곤 한다. 본성은 변하기 힘들고, 수타면 장인의 면 뽑는 실력이 갈수록 향상되듯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면 강화됐지 절대 퇴화하지 않는다. 무책임, 거짓말, 폭력성 등 없어지길 바라는 상대의 본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라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욱 단단하게 자리 잡는다는 소리다.
결과적으로 그의 변하지 않음은 내 사랑을 변하게 했다.
그의 사랑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나도 변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상담에서 방법을 배워봤자 해답지는 해답지일 뿐 우리의 '틀림'앞에서 나는 평정심을 잃고 답이 아닌 본성을 내밀었다. 상대방의 다름이 칼로 나를 푹푹 찌르듯 아프게 하는 와중에 피나는 노력까진 무리였나 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데 10년이고 20년이고 견디며 그의 변화를 기다렸어야 했나?
양귀자의 <모순>에서 주인공 안진진의 엄마는 화가 나면 모든 걸 집어던지고 폭주하는 남편과 끝내 이혼하지 않고 부부로 남는다. 하지만 이건 30년 전 소설의 이야기다. 지금은 다르다. 20년 뒤 "여보 내가 너무 미안했어"를 듣는 것보다 빨리 이혼하고 그 20년을 좀 더 재밌고 가치 있게 사는 게 서로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다름'이 많은 부부는 티격태격 싸우더라도 어떻게든 조율하며 앞으로 나아가지만 '틀림'이 많은 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족쇄가 된다. 다른 곳에 쏟았으면 반짝반짝 빛을 냈을 소중한 에너지가 서로의 다름을 비난하고 경멸하느라 쓰이면서 빛나야 할 각자의 인생은 결혼생활로 인해 캄캄해진다.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하는 결혼이 서로의 성장을 막는 거다.
나는 이번 연재를 통해 부부상담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이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거 같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날 필요는 없지만 다르더라도 맞춰갈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한다. 결혼을 한 뒤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다름을 마주했다면 최대한 빨리 상담을 통해 극복가능 여부를 체크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빨리 헤어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다름이 아닌 '틀림'을 받아들이는 건 애초에 너무 힘든 일인데 혼자 끙끙거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변하지 않고, 변한다 해도 그 변화는 '본인이 원할 때'에만 일어난다. 본인이 원치 않는 변화를 강요할 때 부부사이는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니 나를 못살게 굴고 고통스럽게 하는 '틀림'은 투쟁을 해서라도 조율해 나가야겠지만 그 외에 치명적이지 않은 다름은 최대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거 같다. 나의 불편함을 알리되 잔소리하지 않는 것이 원만한 결혼생활의 핵심이지 않을까.
이번 연재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거나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다. 과거에 홀로 고민했던 시간이 너무 아깝고 또 불쌍해서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계실 분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글이고 싶었다. 무기력하게 지내며 시간에게 결정을 미루기보단 문제를 직시하고 바로 행동하라고, 상담을 받아보고 아니다 싶음 빨리 헤어져서 자신의 인생을 살자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인데 위로를 받았다고, 도움이 됐다고 남겨주신 댓글에 밤새워 글을 쓴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다시 한번, 진심 담아 댓글 남겨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내 주제도 모르고 월수금이라는 무리한 연재 스케줄을 잡는 바람에 연재일을 못 지키거나 시간에 쫓겨 만족스럽지 못한 글을 발행한 적도 있었고, 번아웃이 와서 일주일간 글을 못 쓴 적도 있었다. 작가로 거듭나는 중인 애벌레 같은 나에게 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기어 다녀야 하는 한계를 동시에 깨우쳐준 연재였다. 관심 가져주신 독자 분들에 대한 감사함도 크지만 더 잘 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첫 번째 연재를 하며 다 털어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곳곳에 숨어있던 전 남편과의 묵은 감정을 새로이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연재를 통해 정말로 남김없이 털어낸 듯하다. 글을 통한 치유와 정화를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 연재는 내 얘기를 해볼 생각이다. 전 남편과 나의 이야기가 아닌 이혼하고 혼자가 된 인생을 즐기는 나의 이야기. 이혼 후 찾아온 수많은 번뇌와 현실적인 고민부터 제주로 도피하면서 맞이한 새로운 삶의 시작과 신선한 경험 속에서 얻는 소중한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예정이다.
8월 말쯤 한층 더 빠릿해지고 성숙한 애벌레가 되어 성실하게 써 내려갈 세 번째 연재로 찾아올 것을 약속드리며 '이혼 후 다시 보는 부부상담일지'의 연재를 마칩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읽어주시고, 좋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2025. 8. 9
온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