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얘기한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나도 대체로 동의하는 바다. 특히 결혼생활에서 배우자와 의견 충돌이 있을 때 '내가 맞고 넌 틀려'라는 생각은 모든 갈등의 시작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다고 생각하고 싶었으나 마지막 순간까지 틀릴 수밖에 없는 것도 존재한다.
한때는 사랑하는 사람 간의 다름은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맞춰가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못 맞출 건 없다고. 그 믿음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너무나도 다른 (전) 남편과 잘 맞춰가 보고자, 알아가 보고자, 이해해 보고자 말이다.
1년간 상담을 받고도 끝내 이혼해야 했던 그 과정 속에서 도저히 양립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다름도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냐는 다소 꼰대 같고 이상주의자 같은 내 가치관의 첫 번째 좌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공존할 수 없는 서로의 다름을 자신에게 맞추기 위해 싸우고 또 싸우며 서로의 인생에 흠집을 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단 깔끔하게 포기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게 더 현명한 결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지독히도 고된 과정을 통해 배운 거다.
결혼생활은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고 절충해 나가는 과정이다. 끊임없이 의견이 충돌하고 싸우기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소리다. 그 다름에는 맞춰가기 쉬운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추위를 잘 타냐 더위를 잘 타냐 같은 체질적인 차이는 둘의 다름이 공존하기 쉬운 경우다. 여름엔 에어컨을 켜고 추운 사람이 옷을 입고 있으면 되고, 겨울엔 난방을 틀고 더운 사람이 벗으면 된다.
씻기 전엔 절대 침대에 눕지 않는 사람과 외출 후 침대에 쓰러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 침대를 두 개 놓을 공간적 여유가 없다면 절충이 불가능하니 한 명이 결국 자신의 다름을 포기해야 한다.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충돌은 무수히 많은데, 토론이나 의견 차이로 부딪혀 본 경험이 많지 않으면 내 뜻에 반대 의견을 내는 걸 공격으로 받아들여서 쉽게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두 사람의 생각이 첨예하게 다른 경우는 어떨까?
예를 들어 개를 너무 좋아하는 남녀가 만나 결혼을 했고 함께 개를 입양했다고 가정해 보자.
연애할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남자가 오래 키웠던 강아지를 유기한 적이 있음을 알게 됐다.
여자: "어떻게 가족 같은 애를 버릴 수가 있어!? 그건 범죄 아니야?"
남자: "나도 그러기 싫었는데 맡아줄 사람이 없는걸 어떡해? 그리고 어차피 개인데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버릴 수도 있지, 먹는 사람도 있는데 뭘 그래?"
정 반대인 두 개의 생각은 사람의 성향에 따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좀처럼 양립하기 힘들 수도 있다. 싸움은 일단락되더라도 두 사람 마음속 깊이 박혀있는 도덕성과 가치관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은 말 안 들으면 때려야 한다는 사람과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사람, 소 돼지는 먹어도 된다는 사람과 어떠한 동물도 먹으면 안 된다는 채식주의자가 있듯 세상에는 공존하기 어려운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이렇게 도덕성과 가치관이 어긋나고 이로 인해 자주 부딪히게 된다면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1. 상대방의 생각을 받아들인다.(공존)
2. 내 생각을 바꿔본다.
3. 상대방을 설득해 본다.
1번은 상대방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다. 꼭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너는 그렇구나" 하고 넘기면 된다. 그게 안된다면 2번, "그래 내 말만 옳은 건 아니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상대방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 둘 다 도저히 안 되겠다면 3번, 마지막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바꿔보는 거다.
대신 상대방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의견을 전달하고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는지 얘기해 볼 순 있지만 그것을 강요하거나 강제하면 안 된다. 배우자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은 불행한 결혼생활의 시작이다.
위의 3가지 선택이 모두 불가능할 때, "유기해도 된다, 때려도 된다"와 같은 상대방의 생각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정나미가 떨어질 때, 그의 생각을 바꿔보려 했으나 오히려 자기주장을 공고히 하며 화를 낼 때. 이때가 다름이 아닌 틀림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의 다름이 나의 도덕성이나 가치관에 크게 위배되면서 불편한 감정을 일으킬 때, 나를 슬프게 하거나 아프게 할 때 또는 그러한 다름을 갖고 있는 것 자체로 그가 싫어질 때, 그 다름은 맞춰갈 수 없는 다름, 즉 틀림에 가깝다. 그리고 힘들다고 얘기를 했는데도 배우자가 변화를 도모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이혼을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리 상대방이 다름을 주장해 봤자 눈에 흙이 들어가도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남편의 폭언과 화가 나서 하는 무례한 행동이 그러했다.
그는 내가 그를 화나게 했으니 '당연히(마땅히)' 나에게 욕을 하고 화를 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속상하다고 말해도 그 당시에는 전혀 미안하지가 않다고 했다. 욕먹을 짓을 했으면 먹어도 싸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 이혼을 하는 순간까지 나와 대립했다.
반면 배우자에게 욕을 하는 건 내게는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생각이 다른 거라며 받아들이고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연애시절 남편이 내게 욕을 했다면 당장 헤어졌을 만큼 용납할 수 없는 거였다.
이미 결혼을 했는데 '틀림'을 맞닥뜨리게 되면 매우 당황스럽고 나의 선택과 결혼을 후회하게 되기도 하는데, 바로 이때가 상담을 받아야 할 타이밍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다름을 마주했을 때, 맞춰갈 수 없는 다름을 발견하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나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힘든 상황이 지속될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배우자를 이해해 보고 내 생각을 바꿔보려 마지막으로 노력해 볼 수 있는 것이 부부상담이다.
결과적으론 상담을 통해 진정으로 맞출 수 없는 다름인지, 이혼하는 게 최선인지 판가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꿔보려 노력해 보는 것. 참을 수 없는 그의 다름을 사랑까진 못해도 용인이라도 해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다름을 조율하는 법을 배우고 배우자가 싫어하는 나의 다름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상담 과정이다.
상담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니 혼자는 할 수 없던 많은 것이 가능했다. 틀림으로 인한 싸움에 지쳐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면 빨리 부부상담을 받아보고 관계 개선 유무를 판단해 보면 좋겠다. 헤어질 거 라면 당장 헤어지고 같이 살 거면 이혼이라는 싹을 자르고 앞만 보고 가는 게 현명하다.
나도 처음 '틀림'을 마주한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바로 상담을 받았다면 이혼 고민으로 갈팡질팡하느라 젊음을 낭비하지 않고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거다. 어떤 고민이든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상담을 통해 조금이라도 마음을 정하고 남은 삶에 집중할 수 있길 바란다.
상담을 받고도 문제가 극복되지 않는다면 빠르게 이혼하는 게 낫다. 맞출 수 없는 다름을 맞추느라 서로의 인생을 허비하기보단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다. 섣불리 "이건 맞출 수 없어, 받아들일 수 없어" 단정 짓고 쉽게 헤어짐을 선택해 버리면 훗날 더 노력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남을 수 있기에, 꼭 상담을 통해 해 볼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본 후 이혼을 결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 부부의 경우 상담을 끝마친 시점에는 일시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생각을 바꾸었다기보단 상담을 통해 남편이 그런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를 화나게 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도 본인이 잘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깨닫고 분노를 줄이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자 남편의 태도는 상담 전과 별다를 바 없는 상태로 돌아왔다. 원래의 본성이 이끄는 데로 흘러가게 된 거다.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의 저자 이지훈 변호사님은 공자가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조금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이렇게 얘기한다.
썩은 나무를 조각하면서 여러분의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썩은 나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듯 그의 입장에선 내가 그럴 수 있다. 맞출 수 없는 다름은 적어도 나에겐 다름이 아닌 틀림이기 때문에 그걸 맞추려 하다 보면 싸울 수밖에 없고, 그의 생각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부정하는 나도 부정을 당하는 그도 힘든 건 마찬가지고 다른 곳에 쓰여야 할 에너지가 썩은 나무를 조각하는데 쓰이게 되면 삶은 점점 시들어 간다.
그러니 상담을 통해 최대한의 노력을 해보고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문제를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 맞출 수 없는 것을 맞추기 위해 낭비하기에는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나의 오늘이 너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