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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상담을 통해 배운 것 1 - 대화

by 온호류



당연하면서도 어찌 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 바로 대부분의 부부싸움은 대화로 시작한다는 거다. 우리의 결혼생활에서도 화기애애하던 저녁식사를 살벌하게 만드는 주범은 단연 '대화'라는 놈이었다.


대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또는 그 이야기.


잘만 다루면 안에서 꿍하고 있는 불만과 서운함을 속시원히 끄집어내 풀어줄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잠잠하던 마음을 마구 휘저어 놓고 끝내 불까지 붙여 고함을 지르지 않고는 못 배기게끔 만들 수도 있는 이중적인 놈이다.


하긴 세상에 이중성을 가지지 않은 게 어디 있으며, 그중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양면성의 끝판왕이 결혼 아니겠나?


연애할 때는 맛볼 수 없는 극강의 행복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줄 회전목마를 타고 천국으로 가느냐, 사랑했던 사람이 꼴도 보기 싫어지는 실망과 좌절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지옥으로 가느냐, 이 운명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그 또한 단연 '대화'이다.




결혼하고 살아가면서 끝없이 마주해야 하는 '이해할 수 없음' '참을 수 없음'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아무리 '말은 가장 낮은 수단의 의사소통 능력'이라고 하지만 언어보다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 바로 대화의 기술일 거다. 서로의 기분이 상하지 않으면서도 속마음을 오해 없이 전할 수 있는 능력과 부정적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지 않고 대화로 차분하게 풀어내는 능력 말이다.


이 능력만 갖출 수 있다면 부부싸움의 빈도는 줄고, 부부관계는 돈독해지면서 천국으로 가는 회전목마에 쉽게 탑승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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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월에 2번 정도 상담을 받았고 특별한 사건이 있는 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상담 말미에 대화법을 배우고 연습했다. 때론 이론적인 부분을 길게 이해시켜 주시기도 했고, 선생님 앞에서 (전)남편과 손을 마주 잡고 앉아 '이마고 대화법'으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우리가 1년여간 배운 것을 핵심만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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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화의 핵심은 위의 4가지가 순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내 생각을 잠시 멈추고(반박할 거리를 찾지 않고) 오롯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떠 감정으로 말하고 있는지 들으려 노력하는 경청, 상대방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내가 경청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반사, 상대방의 감정을 읽어주고 존중해 주는 인정.


이 3가지는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3가지가 선행된 후에 오해를 풀든, 변명을 하든 내 생각을 말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의 답답함은 풀리지 않은 상태로 남아 내 감정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가장 중요한 3가지를 건너뛰고 '내 생각'만 말하며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곤 한다. 그러니 긴 대화를 해도 벽에다 말하는 것 같고 남는 게 없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다름만 확인하면서 좌절감만 든다.


반사와 인정만 잘해줘도 평생 싸울 일이 없고 대화로 힘든 일도 없을 거라고 상담선생님은 강조하셨다. 들은 얘기를 그대로 되풀이하며(반사) '이렇다는 거지?' 물어 주면 일단 상대방은 자신의 얘기를 잘 들어줬다는 것에 기분이 좋고 안정감이 든다. 또한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뭐 이런 거 가지고 그래?"라는 식의 부정이 아닌 상대방의 감정을 수용해 줌으로써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대화는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하다. 내가 먼저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줘야 상대방도 내 얘기를 들어준다. 억울한 마음과 속상한 마음이 앞서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 얘기 또한 상대방에게 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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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에 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할 때 서로를 탓하고 비난하게 되는 건 흔히들 저지르는 실수다. 누구나 기본적으로 공격/방어 본능을 가지고 있어서 공격을 받으면 방어 태세를 취하기 마련이다.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누군가에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속으로라도 말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대화의 목적이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는 거라면 아주 잘하는 짓이겠지만 부부대화의 핵심은 갈등과 오해를 풀고 더 나은 관계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비난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건 내가 5년간 (전)남편과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진리다. 비난은 비난을 부를 뿐 아무것도 나아지게 할 수 없다. 남편은 비난의 언어를 참 잘 쓰는 사람이었고, 나는 자기방어적 공격성이 강해서 비난을 받으면 그 비난을 그대로 맞받아치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비난의 언어를 쓴 줄 모르는 남편은 내 비난을 받고 더 큰 화를 내곤 했다.


즉 상대방의 잘못을 탓하고 꼬집는 대화는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 주었던 상대의 자잘한 잘못들을 죄다 소환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대화의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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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방심해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소모적인 대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대화에서 중요한 3가지를 체계화한 것이 '이마고 대화법'이다.


이마고 대화법(Imago Dialogue)은 부부 치료와 관계 개선을 위해 개발된 소통 방법으로 감정적인 방어 없이 안전한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구조화된 대화 방식이다.


1. 거울처럼 반영하기 (Mirroring) :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반복하거나 요약하여 되돌려주기.

→ “그러니까 당신이 말한 건 ~ 이렇다는 거죠?” / “내가 이해한 바는 ~ 이런데, 잘 이해한 거 맞아?”

→ 핵심은 상대의 말을 내 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 반영해 주는 것.


2. 인정하기 (Validation) :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함을 표현한다.

→ “그렇게 느낄 수 있겠네요.” / “당신 입장에선 그게 합리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겠네.”

→ 동의가 아니라 이해에 초점을 맞춤. 꼭 같은 생각이 아니더라도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느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해 주는 것.


3. 공감하기 (Empathy) : 상대의 감정에 대해 공감을 표현한다.

→ “그 상황에선 당신이 속상하고 외로웠을 것 같아요.” / “네가 충분히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거 같아.”

→ 상대방이 느낀 감정을 알아주고, 위로해 준다.


이마고 대화법에선 경청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상담선생님은 이 대화법에 두 가지를 더 강조했다.


1. 대화 시작 전에 상대방에게 대화할 시간이 되는지 먼저 물어보고 동의하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2. 주어는 항상 '나'여야 한다.


상대방은 대화를 할 준비가 안 됐을 수도 있고, 바쁜 상태에서 멋대로 대화를 시작하면 없던 짜증이 솟구칠 수도 있다. 대화를 시작해도 되는지 묻는 것으로 이미 상대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승낙한 상대는 좀 더 진심으로 임하게 된다.


또한 주어가 상대방이 되면 자연스럽게 비난의 말로 이어지기 쉽고, 그럴 의도가 없었더라도 상대는 공격처럼 느낄 수 있다. "내 기분은 이랬어",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행동으로 인해 내가 느낀 좌절감, 속상함, 화남에 대해서만 얘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겠다.




예시 상황

: A가 오늘 있던 일을 얘기할 때 B가 스마트폰을 보면서 대화해서 자신과의 대화를 소홀히 여긴다고 느껴짐.


A (말하는 사람):

“여보 잠깐 나랑 얘기할 시간 내줄 수 있어?” (동의하면 진행)

“평소에 내가 오늘 하루 어땠는지 이야기하면, 당신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대충 대답하잖아. 그때 마치 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져. 당신이 내 얘기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좀 서운해.”


B (듣는 사람):

1. 반영(Mirroring)

“그러니까 당신 말은, 당신이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스마트폰을 보면서 대답을 대충 해서 당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당신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거지. 내가 잘 이해한 거 맞아?

✅ A: “응, 맞아.”


2. 인정(Validation)

“그럴 수도 있겠다. 당신 입장에선 내가 당신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당신이 말해주니 이해가 되네.”


3. 공감(Empathy)

“당시에 속상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었을 것 같아. 당신 얘기를 관심 있게 들어주길 바랐는데 내가 그걸 무시한 거니까.”


이후에 B가 “미안해, 다음엔 당신 얘기를 더 집중해서 들을게.”라고 말하면, 단순한 사과보다 훨씬 강력한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진다.


A가 "당신은 왜 맨날 핸드폰만 봐? 그만 좀 보면 안 돼? 또 유튜브 봐?"라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언어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B는 방어적인 감정 반응 없이 A의 말을 들어줄 수 있었다. 그 결과 A는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고 또 이해받을 수 있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대화법은 사실 지키는 게 꽤나 힘들다. 대화는 철저히 습관화된 것이기 때문에 의식하고 고치려 하지 않으면 하던 대로 말하게 된다. 특히나 감정이 상하면 더욱 이전으로 돌아가기 쉬워서 매일 연습해도 일상생활에 적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의 경우도 켜켜이 쌓여온 감정과 짜증이 습관화되어 기분이 많이 상하지 않았을 땐 대화법을 적용했지만 화가 많이 났을 땐 둘 다 전혀 따르지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매일매일 연습하고 아침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상담을 하고 있는지 되뇌며 더욱 치열하게 노력했어야 했는데 우린 그렇지 못했다. 참 후회스러운 부분이다.


무언가를 깨닫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깨달음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일인 듯하다. 새해에 아무리 좋은 목표를 세워도 그 목표를 세운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연말에 결국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툭하면 대화가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분들은 3가지만 바꿔보길 바란다.


1. 주어를 '나'로 하고 나의 감정만을 말할 것. 비난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 아무것도 개선할 수 없다.

2. 상대방의 얘기를 먼저 경청해 줄 것. 말을 끊지 않고, 내 생각을 멈추고 오로지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에 집중하기.

3. 반사/인정 후에 내 얘기를 할 것. 반사/인정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풀어준 후에 내 얘기를 해야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


내가 만약 부부상담 초기로 돌아간다면 이 3가지를 적어 집안 곳곳에 붙여놓고 아침이나 저녁에 시간을 내어 남편과 함께 매일 연습하고 필사도 하면서 어떻게든 몸에 배도록 피나는 노력을 했을 거 같다.


우리 부부가 결국 헤어진 이유는 이 대화법이 가져올 변화를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대화는 부부관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부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목숨을 걸고 대화법을 바꿔야만 한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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