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갑자기 복통이 시작됐다.
어제 받은 스트레스가 치명적이었던 건지,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건지, 소파에서 자면서 배가 찼던 건지 모르겠지만 장경련과 복통으로 죽다 살아났다. 이혼을 약속한 직후였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전)남편은 하루 종일 나를 보살피고, 나 대신 경태 산책을 나가고, 내가 먹을 죽을 사 왔다.
남편은 나를 간호하면서도 다시 잘해보자고,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고 계속 설득했으나 아픈 와중에도 마음은 확고했다.
다음 날, 남편이 말했다.
"어제 너 먹을 죽 사 오면서 어머니랑 통화했어. 실망스러운 모습 보여 죄송하다고"
"엄마가 뭐래?"
"괜찮다고 위로해 주시더라. 얼마나 힘드냐고. 처음 말씀드린 날 어머니가 문자 보내셨는데, 문자 보내시고 펑펑 우셨다 그러더라고. 나도 너무 속상하고 죄송해서 눈물이 났어. 울면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어머니도 같이 우셔서 마음이 너무 안 좋더라."
"……."
둘 문제인데 부모님은 왜 끌어들인 건지 참 못난 딸 아들이란 생각에 부끄러웠다.
남편은 내 마음을 약하게 할 심산으로 얘기를 꺼낸 듯했지만 죄스러운 마음에 이번에야말로 이 관계를 정리하리라 다짐했다.
소식을 들은 친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1월에 이혼하기로 했을 때 그간 있던 일을 털어놨던 터라 우리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언니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너가 지금 이혼하겠다고 해도 기꺼이 그러라고 할 거지만, 혹시나 한 번만 더 노력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집단상담을 꼭 받아봐. 걔 한텐 그게 답이야"
집단상담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이 모여 상담자의 지도 아래 다른 참여자들의 경험을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상담 형태로, 이를 통해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직접 듣게 되기 때문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데 효과적이다.
"집단상담 진행하는 선생님 중에 분노 관련해선 이 선생님이 최고야 전화번호 알려줄게 통화 한번 해봐."
예전부터 상담에 관심이 많았던 언니는 수년간 개인 상담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아는 선생님이 많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셨고, 우리의 상황을 간략히 설명한 뒤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분노 조절하는 것만 고치면 그래도 잘 지내볼 수 있을 거 같은데 화만 나면 다른 사람이 돼버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집단 상단을 통해서 남편이 나아질 수 있을까요? "
선생님은 귀 기울여 가만히 듣기만 하시다가 내가 말을 마치자 차분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일단 남편분만 상담을 받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꼭 같이 오셔야 하구요. 지금 아내분과 같은 생각으론 절대 관계가 좋아질 수 없습니다."
남편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남편만 상담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남편의 문제를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그를 변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그런데 나의 사고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분노조절만 고치면 된다는 말에 모순이 있어요. 사람을 프로그램처럼 보면 안 돼요. 사람의 감정, 생각, 무의식이 얼마나 복잡하게 엮여있는데 그것만 고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걸 요구하는 걸지도 몰라요. 부부관계는 누구 하나를 고쳐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이 문제를 어떻게 둘이 같이 다룰지 배우고 고민할 때 좋아지는 거예요."
선생님은 시종일관 인간적이면서도 사려 깊었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정신 차리라고 뺨을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속으로 늘 내 탓만 하는 남편을 욕했다. 내가 완벽하다거나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상담을 받을 정도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거두절미하고 말해보면 나 또한 모든 걸 남편 탓으로 돌리고 있던 거다. 남편의 문제만 고치면 다 해결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문제를 내 안에서 찾지 않고 남편에게서 찾고 있던 거다.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저희는 이제 부부라는 이름으로 한 팀이 되었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줌으로써 드림팀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함께라면 어떤 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잘 맞는 한편 너무 다른 우리지만 늘 서로를 아끼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결혼식에서 함께, 한목소리로 낭독한 혼인 서약서의 일부이다.
같은 팀이 되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드림팀이 되자고 약속했다. 남편의 의리 있는 친구로 평생 함께할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약속했다. 그런데 내가 먼저 그 약속을 어긴 거다. 내가 먼저 남편을 다른 팀으로 바라본 거다.
문득 남편한테 미안해졌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했던 문제를 네 잘못이니까 네가 고쳐야 한다고 했고, 잘 안 고쳐지니 그를 떠나려 했다. 결혼해서 '우리'가 되었으면 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인 거였다. 하지만 나는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이 보인 행동을 보고 이혼생각부터 했다.
처음부터 같은 편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다뤄왔으면 이렇게까지 안 왔을 수도 있다. 네 잘못 내 잘못이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의 잘못'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안 왔을거다.
결혼생활에서 배우자를 탓하는 건 헛된 짓이다. 사실 나부터 나의 모든 결점을 고치고 나면 대부분의 문제가 사라질 수도 있다. 내가 못 고치겠으니까 상대방을 탓하는 거다. 내 말투, 내 행동, 내 태도가 남편을 화나게 하는 거라면 왜 이런 사소한 걸로 화를 내느냐 남편을 탓할 게 아니라 내 문제를 먼저 고칠 일이었다.
상대방 탓을 하려면 상대방이 계속 불만을 제기하는 나의 문제 그리고 나 또한 알지만 고쳐지지 않는 내 문제부터 완전히 고친 뒤여야 한다.
첫 번째 상담에서 선생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이 감정을 해소하고 정리하는 건 전적으로 남편의 몫이지 내가 원하는 데로 바뀌길 기대하면 안 돼요. 성장은 온전히 남편에게 맡겨야 합니다."
남편의 성장은 남편 몫으로 남겨야 한다고. 그 말이 이제야 와닿았다. 남편의 잘못을 고치는 건 남편이 스스로 할 일이었다. 내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었다. 나는 내 단점이나 고치고 내가 어떻게 달라져야 남편과 조화롭게 살 수 있을지만 고민하면 되는 거였다.
나는 선생님과의 통화 후 다시 한번 남편과 노력해 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남편의 변화를 기대하는 게 아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기로 했다. 남편의 문제를 팔짱 끼고 지켜보는 게 아니라 마치 내 문제인 것처럼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기로 했다.
*진행한 것
1. 두 번째 이혼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고 피드백을 받음.
→ 라볶이는 시발 역할을 했을 뿐 쌓인 게 터진 것.
→ 남편이 서운함을 표현했다면 쌓이지 않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잘못.
2. 이번 이혼사건에서 남편이 우리 부모님한테 얘기한 그 심리에 대해 추론.
→ 보복심리가 크고, 우리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있음.
→ 남편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내가 이혼하자고 하는 것은 남편 입장에선 충격과 배신.
3. 남편의 보복심리는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아봄.
→ 인정받지 못할 때 분노가 올라오고, 그때 드는 보복의 감정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습관적으로 올라온 것.
→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도 습관적. ex) 자업자득이다. 그래도 싸다.
*상담 선생님의 분석
1. 남편이 감정에 앞서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질러 버리는 것은 '습관성'이다.
2. 남편은 원 가족으로부터 형성하지 못한 애착관계를 나와 형성하고 있고 거기서 인정받지 못할 때 큰 분노를 느끼는데,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화만 낸다.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냥 내지름.
3. 우리는 그냥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 주길 바라고 있는 거다.
4.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을, 서로를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5. 남편의 핵심감정은 경제적 안정 + 인정(존중)이다. 이것만 조심해 주자.
3월 21일, 두 번째 이혼사건을 덮기로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 뒤 우리는 3개월간 싸우지 않았다. 그게 뭐 큰일인가 싶겠지만 우리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서로를 탓하지 않고 문제를 내 안에서 찾으니 싸울 일이 없었다.
'우리의 문제'를 함께 잘 해결해 보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으니 이혼 고민도 사라졌고, 싸우는 일도 없었으니 마음에 여유와 평화가 찾아왔다. 늘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든 게으름과 무기력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겹도록 미뤄왔던 블로그를 시작했다.
4월 초쯤 우연히 남편의 휴대폰 배경화면을 보게 됐다.
후회할 짓 하지 말자. 슬퍼할 가혜와 가족을 생각해, 가혜가 최고다.
자기가 쓴 글을 캡처해서 배경화면으로 해 놓았다. 나는 펑펑 울었다. 고마워서, 미안해서, 남편의 부단한 노력과 간절함이 느껴져서. 내가 이혼하자고 했을 때 얼마나 속상했을까. 얼마나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았을까. 남편의 전부였던 내가,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이제 지쳤다며 손을 놓아버리는 데 얼마나 황망하고 혼란스러웠을까.
남편이 느꼈을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면서 내 마음도 같이 아파왔다. 저 짧은 세 문장의 글을 쓰고 배경화면으로 설정하기까지 남편을 아프게 했을 상처와 그 흉터가 내게도 새겨지는 거 같았다.
나 또한 모니터 아래 내 이름만 남편의 이름으로 바꿔서 포스트잇을 붙여놨다.
'슬퍼할 남편과 가족을 생각해, 남편이 최고다.'
진작에 이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만, 한편으론 후회하지 않는다. 잘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부부상담을 받으며 함께한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나의 결혼생활을, 전 남편을 이렇게 애틋하게 기억할 수 없었을 거다.
우리는 물론 3개월 뒤에 또 싸웠고, 몇 차례의 이혼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싸웠고 진심으로 상담에 임했다. 열심히 배웠고, 배운 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아쉬움도 추억도 많은 나의 결혼생활은 안타까운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영글어 갔다.
-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