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편하다는 말은 사실 세련된 항복이었다

by 온화수

내 마음에는 내가 고용한 적 없는 고집 센 경비원이 산다. 그는 마음의 모든 길목에 묵직한 철문을 달아두고, 누군가 다가오면 주인인 나를 대신해 깐깐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 이 집의 구조를 바꾸려 합니까? 아니면, 쌓인 먼지까지 사랑해줄 겁니까?”


분기마다 날아드는 고독이라는 고지서


한때 나는 스스로 외로움을 타지 않는 사람이라 믿었다. 혼자 하는 저녁 식사는 메뉴 선택이 간결해 좋았고, 주말 내내 침묵을 지켜도 답답함이 없었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날아드는 공과금 고지서처럼, 석 달에 한 번꼴로 어김없이 고독감이 명치를 툭 치고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이 고립감은 주위에 사람이 없어 생긴 공허함이 아니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세운 성벽이 너무 높았던 나머지, 성주인 나조차 밖으로 나가는 길을 잃어버린 탓이다. 누군가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라며 다정한 조언의 탈을 쓴 강요를 할 때면, 나는 즉시 마음의 셔터를 내렸다. 타인이 내 고유한 영역의 타일 색깔을 바꾸려 드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내가 극복하고 벗어나야 할 ‘현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면 나는 다시 견고한 벽 뒤로 숨었다.


물론 새로운 만남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나’와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일은 고역에 가까웠다. 그런 만남 뒤에는 늘 지독한 허무가 뒤따랐다. 내면의 철학적 허기를 채워주지 못하는 관계에 에너지를 쏟느니, 차라리 텅 빈 방의 적막을 견디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매번 이르렀다. 어쩌면 “혼자가 편하다”는 나의 선언은, 타인에게 나의 세계를 내어주지 않으려는 세련된 형태의 항복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안의 완벽한 타인이라는 신화


입으로는 늘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누구보다 까다로운 검문소가 자리 잡고 있다. 나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나의 존재를 온전히 이해해 줄 사람. 그런 인연을 찾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무의식 깊은 곳에는 아주 매력적인 한 사람이 살고 있다. 그는 나를 구속하지 않으면서 내 침묵의 의미를 알아채고, 넓은 마음으로 나의 서툰 구석마저 따뜻하게 안아준다. 내가 현실의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이 완벽한 환상이 깨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답게 살다 보면 언젠가 좋은 인연이 나타나겠지”라는 믿음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안다. 하지만 이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없음이 아니다. 나의 기준을 꺾으면서까지 억지로 외로움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자존심이다. 결국 고독이란 타인의 부재가 만든 공백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타인에게 잠식당하지 않으려 부리는 가장 우아한 저항일지도 모른다.


이제, 기꺼이 빗장을 열어두려 한다


하지만 이제는 길고 긴 시간 동안 붙들고 있던 고집 하나를 슬며시 내려놓고 싶어진다.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견고했던 믿음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 차가운 빗장을 열고 싶다.


시간의 흐름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인 듯하다. 예전에는 누군가 나타나기만을 막연히 기다렸다면, 이제는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그 누군가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만약 누군가 그 문턱을 넘어 들어온다면, 나는 아마 이런 인사를 건네게 될 것이다.


“너구나. 내 안에서 그토록 기다렸던, 또 다른 나.”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상대를 발견한 기쁨만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내면에서만 그려왔던 존재가 현실의 얼굴을 하고 나타났을 때 느끼는 깊은 안도감, “이제 더는 벽 뒤에 숨어 홀로 대화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해방감일 테다.


물론 이 고질적인 고립감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빗장을 쥔 내 손에서 힘을 뺀다. 내 견고한 벽 아래, 작은 틈으로 새어 나가는 진심을 발견한 이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내 가장 소중한 공간을 내어줄 준비가 되었다. 지금 느끼는 이 고요한 떨림이야말로, 내가 여전히 누군가를 진심으로 갈망하는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가장 뜨거운 증거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