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생의 비애를 견디는 뼈대다

의미라는 사치를 부리기 위한 자본이라는 뼈대

by 온화수

"나는 철학적인 성향이라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말은, 어쩌면 가난을 숭고함으로 분칠하려는 게으른 형이상학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속의 영욕보다는 생의 의미가 중하다 믿으며 관념의 먼지를 털어왔는데, 웬걸요. 막상 뛰어든 자본의 전장은 퍽 재미있고도 명징합니다.


​무언가에 꽂히면 끝을 보고야 마는 그 지독한 철학적 공부 습관이 경제라는 영토로 옮겨왔을 뿐인데,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목소리 높여 '돈부심'을 부리는 이들의 호기로운 숫자보다, 골방에서 정밀하게 기업의 이면을 응시한 저의 '철학적 수익률'이 훨씬 더 견고하더군요.


​김훈의 문장처럼 돈은 "생의 비애를 견디게 하는 물리적인 뼈대"이고, 김영하의 소설처럼 자본은 "욕망의 가장 솔직한 서사"입니다.


​돈을 벌어보니 알겠습니다. 의미란 돈이 없을 때 찾는 위안이 아니라, 충분한 자본 위에서 비로소 우아하게 실천할 수 있는 '최후의 사치'라는 것을. 그러니 저는 당분간 근엄한 표정 대신 유머를 챙겨 들고, 이 숫자의 숲을 더 깊이 유랑해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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