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려 할수록 커지는 빈칸에 대하여

by 온화수

짐 캐리는 두 번이나 골든글로브 상을 받고도 무대 위에서 "세 번째 상을 받으면 그땐 내가 충분해질 것 같다"고 농담을 던졌습니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그 농담 뒤에는 뼈아픈 진실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바로 '이 정도면 됐다'는 만족감이 우리 생에 참 오기 힘든 손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찾으며 삽니다. 조금 더 인정받으면, 조금 더 유명해지면, 혹은 조금 더 사랑받으면 비로소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는 기대를 품고 말이죠. 하지만 두 번이면 세 번이 보이고, 세 번이면 네 번이 탐이 납니다. 이 탐색에는 끝이 없습니다.


정해진 결핍, 각자의 허기

저는 예전에 이런 마음을 그저 '욕심'이나 '자존감 문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주를 공부하고 별자리를 들여다보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배고픔의 종류'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어떤 사람은 남들에게 박수받아야만 비로소 숨을 쉽니다.


어떤 사람은 통장에 숫자가 쌓여야만 발을 뻗고 잡니다.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채워야만 안심합니다.


사주에서는 이걸 기질이라 하고, 점성학에서는 별의 배치라고 부릅니다. 이름이야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저마다 채워지지 않는 '빈칸' 하나씩을 옆구리에 끼고 태어난 셈입니다. 이건 고쳐야 할 병이라기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주객전도의 비극

문제는 '나'라는 존재가 '인정'이나 '성취'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거꾸로 그것들이 나를 끌고 다닐 때 생깁니다.


내가 좋아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을 할 때, 내가 사랑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확인받고 싶어 할 때, 삶은 피곤해집니다. 짐 캐리가 말한 '끔찍한 탐색'이 바로 이런 상태일 겁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목적어의 처지로 전락해버린 상태 말이죠.


김훈 작가의 문장처럼 꽃은 그냥 피고, 바람은 그냥 붑니다. 꽃이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피는 게 아니듯, 우리 삶도 누군가의 채점을 기다리는 시험지가 아닙니다.


그냥, 살아가며 발견하는 것들

결국 삶의 방식은 '충분해지려고 애쓰는 것'에서 '이미 충분함을 발견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무언가가 되어야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사주든 점성이든 그 공부의 끝에서 제가 배운 건 하나입니다. "당신은 이미 당신답게 흐르고 있다"는 격려입니다. 내가 가진 인정 욕구나 성취욕을 억지로 누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나를 증명하는 유일한 도구가 되지 않게만 하면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꼭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사람들의 박수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행복은 쫓아갈 때 도망가고,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내 할 일을 할 때 슬그머니 곁에 와 앉는 길고양이 같은 것이니까요.


찾지 않을 때 비로소 가장 귀한 것들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도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기보다, 이미 곁에 있는 것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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