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벌레와의 삼색 토론

by 온화수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경기도 북부여서, 벚꽃이 늦게 핀다. 봄비가 오기 막바지에 잠깐 피었다가 다 성장하기도 전에 우수수 내려 온다.


벚꽃이 지나갈 때쯤 세찬 바람과 함께 꽃샘추위가 며칠간 계속된다. 늦가을 밤처럼 기온이 서늘함을 넘어선다. 그러다 어느 사이 방 안에서 푸석푸석 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손톱의 20분의 1 크기도 안 되는 벌레들이 비닐봉지를 건드리는 소리다. 그런 소리들이 나기 시작하면 거짓말처럼 날이 따듯해진다.


낮엔 민들레 씨앗이 날아다니고 밤엔 나방이 밝은 방충망에 붙는다. 아무것도 나지 않을 것 같던 딱딱하고 황폐했던 땅에서 온갖 들풀과 꽃이 올라온다. 허전했을 땐 채웠으면 하고, 채워지니 뽑고 싶다.


부엌에 작은 벌레가 들어온다. 내가 발로 밟으려 하자, 엄마는 죽이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엄마는 휴지를 가져와 벌레를 감싸고 창밖으로 내보낸다.


나는 엄마에게 묻는다. "왜 살려주는 거야?"


엄마는 말한다. "생명이잖아. 너도 생명이고."


이해는 가지만 찜찜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풀어주면 다시 들어올지도 모르잖아."


"좀 들어오면 어떠니. 쟤네도 먹고살겠다고 들어오는 건데. 우리는 벌레를 내쫓았으니 된 거고, 벌레는 살아 돌아갔으니 된 거고."


"하긴... 죽이면 소문이 안 나잖아. 잡았다가 풀어줘야 같은 벌레들에게 소문을 내지. 저 집은 위험하다고 말이야."


"너 다운 생각이다."


체로키 인디언들은 사랑한다는 말 대인 이해한다는 말을 한다. 사랑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해보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는 작은 벌레의 입장까지도 이해해 보려 하니 진정한 사랑꾼이다. 엄마. 나는 엄마를 이해해.라고 편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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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나는 너를 이해해. 나는 너, 너는 나. 구분 없이 소중함을 실천하는 마음. 측은지심.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더 큰 성공을 위해 말로 여럿 사람을 죽인다. 교언영색하지 않고 측은지심을 실천하려는 사람. 말을 조심히 하면서도 해야 할 말이라면 단호하게 하는 사람. 상황에 따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리더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