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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원 Nov 03. 2021

바다의 여자

나를 찾아가는 여행에세이 9 -  부산에서 서핑하기


부산 앞바다에서 서핑을 했다.

자꾸만 몰아치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몇번이고 바다에 들어갔다. 예전과 달리 빗장 걸린 가슴을 바다가 깨어주기를, 이미 닫혀버린 마음을 바다가 열어주기를 바랐나 보다.

파도가 내 가슴을 내리칠 때마다 마음에 단단히 걸어둔 빗장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가장 큰 파도가 내리쳤을 때, 한계에 다다른 가장 단단한 빗장이 산산이 부서졌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그 빗장 말이다.

살아있다는 기쁨은 다른 어떤 즐거움이나 만족감과는 달랐다. 일시적이고 휘발되어 익숙해지고 밋밋해지는 그런 허망함을 불러오는 만족감이 아니었다. 살아있다는 기쁨 속에서 순간은 일시적이거나 휘발되지 않고 영원했다.


바다에 있으면 자기 자신을 잊을 수 있었다.

내 마음속 투명한 유리 감옥이 빛나는 눈부신 햇살과 부드러운 물결 속에 전부 사라져 버린다. 바다가 전하는 끝없는 사랑 속에 있어서 어떤 시 조차 잊어버린다.


<시>


그들은 우리를 붙잡아

감옥 안에 던져 넣었다.


벽 안에 있는 나

벽 밖에 있는 너


하지만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가장 나쁜 일은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자기 안에 감옥을 품고 사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다.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고

착한 사람들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나짐 히크메트, <피라예를 위한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의 시> 중에서*



다시 도시의 집으로 돌아와 익숙한 풍경에 몸과 마음이 느슨해질 무렵, 샤워를 하려고 물을 튼 순간 나는 어떤 살아 움직이는 감각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인어처럼 피부가 그 감각을 기억하고 물을 흡수하고 동화되는 느낌이었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그런 감각이었다. 바다의 여자가 되어서 마치 물이 닿는 표피로 숨을 쉬듯이 눈을 감고 호흡을 내뱉으며 살아서 쏟아져 내리는 물을 느꼈다.

바다에 뛰어들어 시간을 보내고 끊임없는 샤워로 온종일 젖은 머리칼과 마를 새가 없이 물기를 머금은 피부로 지냈던 그 일주일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서핑여행 마지막 날 아침, 보송보송한 침대에서 물기가 마른 몸으로 버석거리는 이불의 기분 좋은 촉감을 느끼자 마치 예전으로 돌아왔다는 듯이 오랜만에 바다를 찾은 도시인이 되어 바다에 발가락을 담그는 것조차 고민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모래는 씻기 불편한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고 바싹 마른 새 옷을 입고 물방울 하나 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다. 바다에 들어가는 건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모든 것이 젖어 질척하고 꿉꿉한 상태에서 벗어나 이제 어떤 불편함도 없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내 피부가, 내 몸이, 내 머리카락이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


마치 인어가 물을 그리워하듯이.




*<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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