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을 멈출 수 없는 당신,
어쩌면 이 시대의 농노?

그때는 낫을 들었고, 지금은 스마트폰을 듭니다

by ONIGIRI
목차
1. B.A. / A.A. (Before A.I. / After A.I.)
2. 기술, 지배계층, 그리고 정당화 도구
3. 디지털 땅의 농노
4. 자발적 불편함

1. B.A / A.A (Before A.I. / After A.I.)

125608722.1.jpg 마켓앤마켓이 공개한 2030년 전 세계 인공지능 시장 전망 자료. / 출처=마켓앤마켓

AI의 등장 이후,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 경계선을 지났습니다.


마치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넘은 것처럼,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 속에서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시대에서, 어떤 시대로 넘어온 것일까요?


2. 기술, 지배계층, 그리고 정당화 도구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의 발전은 단순한 편의의 도구를 넘어

지배 구조를 형성하는 결정적 수단이 되어왔습니다.


기술은 언제나 풍요를 약속하는 동시에,

그 풍요를 통제하는 자에게 지배력을 부여하는 무기가 되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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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농업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최초로 '잉여생산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잉여생산물은 풍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을 낳았고,

이를 중심으로 계급이 생겨났습니다.


왕이라는 지배계층이 등장했고,

그들의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가 체계화되었습니다.

왕은 신의 대리인이라 여겨졌고,

백성의 노동은 '신을 위한 헌신'으로 포장되어 정당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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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들어 증기기관과 대량생산의 시대가 열리며,

또 다른 전환이 일어납니다.


산업혁명은 자본을 소유한 새로운 지배계층,

부르주아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신의 뜻'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성과 과학, 그리고 합리성이라는 개념이

새로운 정당화의 언어가 됩니다.


공장에서의 노동은 '생산성''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미화되었고,

인간은 '기계의 부품'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삶은 소외되었고,

프롤레타리아의 목소리는 '합리적 시스템'이라는 이름 아래 묻혔습니다.


즉, 기술은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

그 기술을 먼저 소유하거나 제도화한 자가

지배력을 갖는 구조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지배는 시대마다 새로운 언어와 정당화 방식으로 우리를 설득해왔습니다.


3. 디지털 땅의 농노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을까요?

AI와 알고리즘, 플랫폼 기술이 일상이 된 이 시대의 지배 구조는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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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 퓨달리즘』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온라인 세상에서 우리는 중세 시대의 농노 같은 존재가 됐다."


이 문장을 현실에 비춰봅니다.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 농노는 ‘땅’을 소유하지 못한 채,

그 땅의 주인인 영주를 위해 노동력과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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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디지털 땅'은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입니다.

이를 소유한 자는 구글, 메타, 아마존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며,

우리는 그들의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주의력', '시간', '데이터', '소비 행위'를 바칩니다.


노동의 대상이 단지 물리적 생산이 아닌,

우리의 감정과 관심, 클릭과 스크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중세에는 종교가 이 질서를 떠받쳤습니다.

삶은 신의 뜻이었고, 영주에게의 복종은 구원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은 '나만의 알고리즘'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변해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과거의 '나'가 좋아했던 것들에 나를 고정시킵니다.


이 알고리즘은 나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내가 좋아할 콘텐츠를 미리 예측해 보여줍니다.


그 안에서 나는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선택지가 정교하게 설계된 경로 안에 갇혀 머무르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은 이제 알고리즘만 잘 설계하면,

돈을 들이지 않고도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머무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품을 소비하지 않더라도,

존재 그 자체로 수익화 가능한 자산이 되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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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는 현대의 권력은 억압적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삶을 통계화하고 규범화하여,

나로 하여금 스스로 복종하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합니다.


질 들뢰즈는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이제 '통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제 사회는 더 이상 문을 닫고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열려 있으되 끊임없이 흐르고 감시하는 시스템입니다.


사람은 특정 장소에 갇혀 있지 않지만,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추적되고 작동되며, 행동을 유도당합니다.


오늘날의 플랫폼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앱은 우리의 이동, 클릭, 감정, 심지어 머무른 시간까지 추적합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음 행동을 설계합니다.
이 통제는 강요하지 않지만, 거부할 틈도 주지 않습니다.


과거의 종교와 사상 "이래야 한다"고 말했다면,

지금의 알고리즘과 피드"이걸 좋아할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부드럽지만, 강력합니다.


4. 자발적 불편함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론은 단순합니다.


알고리즘의 영토에서 벗어나는 시간,

주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확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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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 철학자들은 말했습니다.

"세상의 조건이 아니라, 내 판단이 나를 규정한다."


그들의 철학은 '자발적 불편함'으로 요약됩니다.

의도적으로 불편한 상태를 받아들이며,

외부 자극이 아닌 내면의 판단을 근거로 행동하는 연습입니다.


예를 들어 하루쯤은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외출해보는 것,

자동 추천을 끄고 내가 고른 콘텐츠를 소비해보는 것,

알고리즘 대신 우연과 마주하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쌓일 때, 우리는 다시 '생각하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우리가 반드시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기술이 바꾼 세계 속에서, 나만은 바뀌지 않을 자유. 그것이 진짜 자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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