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결국 사람을 찾게 되는가?
목차
서론 -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찾는다
본론
1. 유한한 인간이라는 동질감
2. 서사가 있는 배움, 그 안의 깨달음
3. 모방과 진정성, 그리고 감정의 실재성
정리 - 그래서 우리는, 결국 사람을 찾는다
결론 - 그래서 인간은, 여전히 특별하다
요즘은 채팅으로 AI와 상담을 받고,
보고서를 쓰다 막히면 AI한테 먼저 물어봅니다.
대답은 빠르고, 말투는 친절하고,
때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이상합니다.
마음이 복잡할 때, 진짜로 괜찮은지 묻고 싶을 때,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찾습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정확한 문장을 아무리 유려하게 뱉어내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남습니다.
그 공백은 단순한 기술의 한계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것은, "나는 인간이고, AI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감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AI가 인간의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되면서,
우리는 되려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니다.
"그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간과 AI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일까?"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저의 사적인 대답입니다.
먼저, 인간에 대해 살펴봅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지치고, 병들고, 실수하고,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 유한함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동시에,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본질적인 조건입니다.
우리는 이 한계를 통해 서로를 이해합니다.
길을 잃고 방황했던 기억,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났던 밤,
그 모든 순간들이 '너도 그랬구나'라는 감각을 가능하게 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라 불렀습니다.
자신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존재.
그렇기에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을 더 진지하게 살아가고,
타인의 존재를 소중히 여길 수 있습니다.
반면, AI는 유한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기다리지 않으며, 실수로 인해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삶을 마주한다는 감각,
시간이 흐른다는 무게,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행위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같은 조건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 때문입니다.
아플 수 있고, 늙을 수 있고, 언젠가 끝날 수 있다는 그 감각.
같은 생의 조건을 공유하는 존재만이 진짜 연결될 수 있습니다.
AI는 학습합니다.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알고리즘을 통해 규칙을 찾고, 오류 없이 정답에 도달합니다.
그 과정에는 방황도 없고 감정도 없습니다.
정보는 빠르고 정확하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배우지 않습니다.
인간의 배움은 언제나 서툴고, 감정적이며,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배운다는 것은, 단지 어떤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이 삶 속에서 감각되고, 감정 속에서 이해되고,
결국 나를 바꾸는 일입니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앎이란 뇌가 아니라 몸으로 체득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몸으로 기억하고, 마음으로 반응합니다.
실제로 길을 잃고, 다시 돌아와 길을 찾은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길을 안다"는 말을 삶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다머는 진정한 이해란 '지평의 융합'이라고 말합니다.
배움이란 단순히 새로운 개념을 흡수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온 세계의 시선과 새로운 세계가 맞닿고,
그 충돌 속에서 내가 다르게 살아가야겠다고 느끼는 순간이 배움입니다.
AI는 정답을 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를 통한 변화,
감정을 동반한 깨달음,
내 삶이 흔들리는 감각은 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모르고, 헤매고, 멈췄다가
문득, 아주 사적인 맥락 속에서 어떤 사실을 '알게 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때, 이전의 나와는 조금 달라집니다.
깨달음은 정보가 아닙니다.
그것은 감각이고, 서사이고, 존재의 이동입니다.
AI는 감정을 모방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말투, 따뜻한 표현, 공감의 문장을 잘 배워냅니다.
인간보다 더 공감적이고 일관된 반응을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감이란, 말의 정밀도보다
그 말에 담긴 존재의 무게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인간의 공감은 늘 조금 흔들리고,
조금 주저하며, 때때로 감정에 휘청입니다.
그 서툶과 진동이 오히려 마음을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압니다.
그 말이 누군가의 진심에서 나왔다는 걸.
그리고 그 말은, 말하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흔들린 말이었다는 걸.
AI는 아무리 따뜻한 문장을 말해도,
그 말에 감정적으로 책임질 존재는 없습니다.
감정이 '작동'할 수는 있어도,
감정에 '휘청'일 수는 없습니다.
그 차이가 바로, 우리가 AI의 위로 앞에서
조금은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입니다.
공감은 정답을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흔들리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 떨림은, 사람만이 줄 수 있습니다.
AI가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친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엔 사람을 찾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위로는 완벽한 문장이 아니라, 함께 흔들리는 마음에서 온다는 걸.
진짜 연결은 정교한 기능이 아니라, 고통을 감각할 수 있는 능력에서 생긴다는 걸.
우리는 위로받고 싶을 때,
이해받고 싶을 때,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찾습니다.
그건 우리가 단지 정보를 주고받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을 겪고, 관계를 맺고, 서사를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빠르고 똑똑한 기술 앞에서
조금 느리고 서툰 존재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 느림 속에, 그 주저함 속에,
진짜 마음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AI는 인간처럼 말하고, 감정을 흉내 내며, 위로의 공식을 학습합니다.
때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문장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느리고 흔들리고 서툴지만,
그 서툶 속에서 진심을 전하고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지금,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단순한 노동은 점점 대체되는 시대입니다.
이제는 무엇을 아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말하는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객관적인 정보보다, 주관적인 진심이 더 오래 남습니다.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건 따뜻함이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을 건네는 일입니다.
그 다정한 능력이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가장 큰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