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부드러운 1950년대의 공기
재즈에 대해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단순히 "멋져 보여서"였던 것 같다. 그중 특히 즉흥 연주가.
그렇게 겉핥기만 계속하던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에 재즈 입문 앨범을 추천해 주는 콘텐츠를 보게 됐고, 그때 들었던 앨범이 바로 'Clifford Brown with Strings' 앨범이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엄청 오래되어 보이는 앨범 커버, 또 썩 좋아하지 않았던 트럼펫이라는 악기까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세상에! 이제는 내 (만) 서른 살 인생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로 꼽게 됐다.
재즈 트럼펫 연주자들 하면 아주 유명한 마일스 데이비스, 쳇 베이커, 루이 암스트롱 등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 많이 보이는 이들과는 다르게 '클리포드 브라운'이라는 이름은 생소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30년 10월 30일에 태어난 그는 1956년 6월 26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스물다섯.
재즈 역사에서 유난히 짧게 남은 이름이다.
열두 살 때 처음 트럼펫을 손에 쥔 그는 1950년대 초중반, 약 5년 남짓한 활동 기간 동안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 높은 연주를 남겼고, 그 짧은 시간 끝에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나이는 커트 코베인, 지미 헨드릭스, 에이미 와인하우스 보다도 한 살이나 더 이른 나이였다. 이른바 ‘27세 클럽’이라 불리는 이들처럼, 그 역시 역사에 길이 남을 연주와 앨범들을 남겨두고 너무 일찍 떠난 음악가로 기억된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같은 밴드에서 연주했고 같은 무대에서 시간을 보냈던 동시대의 재즈 뮤지션
'베니 골슨'은 그를 기리기 위해 추모곡 'I Remember Clifford' 를 작곡한다. 이 곡은 이후 수많은 연주자들에 의해 연주되며, 클리포드를 기억하는 대표적인 곡으로 남게 된다.
베니 골슨은 훗날 영화 '터미널'에 본인 역으로 잠시 등장하는데, 그 장면은 한 초등학생의 기억 속에
‘베니 골슨’이라는 이름을 오래도록 남기게 된다.
트럼펫이나 브라스의 소리를 썩 좋아하진 않았다. 뭔가 방귀 뀌는 것 같고, 불안정하게 들리고, 진득~하지 않다고 해야 하나? 브라스보단 목관 악기의 소리를 더 선호했었다.
이런 편견이 첫 곡 ‘Portrait of Jenny‘를 듣자마자 깨져버렸다.
‘Portrait of Jennie‘라는 영화의 테마곡이기도 한 이 곡에서, Clifford Brown의 트럼펫은 무언가를 과시하거나 밀어붙이기보다는 마치 혼자 독백하듯 조용히 말을 건넸다. 스트링은 그 독백을 방해하지 않고, 그저 옆에서 숨을 고르는 공간을 만들어줄 뿐이었다.
(이 앨범만 들었을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지만, 클리포드 브라운은 속주로도 아주 유명한 연주자라고 한다.)
이 곡은 연주 장면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가 연주하던 모습과,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까지.
보통의 재즈 앨범들이 다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앨범의 거의 모든 곡이 재즈 스탠더드와(그때는 재즈 스탠더드라는 개념이 없었으려나?) 뮤지컬, 영화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흑백 영화들을 보면, 그 주제곡에는 유난히 스트링 소리가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음악을 듣는다기보다는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특히 ‘Blue Moon‘에 다다르면 그 느낌은 더 또렷해진다.
머릿속에서는 실제로 보지도 않은 영화의 장면들이 계속해서 재생된다. 대체로 턱시도를 입은 사내와,
흰 장갑을 끼고 프릴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별빛, 달빛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잔디 공원에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블루스를 추는 그런 장면,
이 앨범을 시작으로 여러 재즈 앨범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결국 이 앨범은 나에게 재즈를 이해하게 만든 음악이라기보다는 재즈를 계속 듣고 싶게 만든 음악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첫 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