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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니기리상 Sep 05. 2021

우리는 엄마의 영원한 아기

냉장고. 30일 에세이 네 번째.


“엄마, 혼자 사는데 뭐가 이렇게 꽉 차 있어요. 좀 비우자, 비워.” 손 디딜 틈도 없는 엄마의 냉장고를 본 나는 엄마에게 핀잔을 주었다. 엄마는 다 꺼내 먹는 거라고 말씀하시며 손사래를 쳤다. 냉장고 문을 열고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냉장고 안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지만 다소 멀쩡해 보이는 고추장, 된장부터 시작해 엄마가 직접 담근 오디즙, 복분자즙, 마른반찬, 배달 음식을 시킨 후 먹지 않고 따로 담아둔 단무지, 먹다 남은 칵테일 맥주, 최근에 담근 오이지와 동치미 같은 것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장은 직접 담근 건데 조금 남았다고 버리기가 아깝잖아. 엄마가 금방 먹어. 오디즙이랑 복분자즙은 주스 만들어주면 한비가 좋아하잖아. 우슬로 우린 물은 정서방도 좀 마시게 하려고 놔둔 거야. 마른반찬은 반찬 없을 때 꺼내먹으면 되고, 한비가 잘 먹길래 너희 올 때 가져가라고 해둔 거야. 단무지는 안 먹었는데 버리기가 아깝잖니. 칵테일 맥주는 다 덜어서 먹었고, 입 안 댄 거야. 그냥 너 와서 맥주 마실 때 엄마도 같이 마시려고 둔 거야. 엄마가 혼자 매번 장 보러 나가서 들고오기도 힘들고, 그냥 놔두면 너희도 먹고 엄마도 먹는데 아깝게 왜 버려.”


다 너희 주려고, 너희 오면 먹이려고.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데도, 엄마는 그저 먼 동구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당장 먹지도 않을 음식들을 끌어안고 계셨다. 문득 무안해진 나는 엄마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시집을 보내도 밥은 잘 챙겨 먹고 사나, 내가 해줄 게 오면 잘해 먹이는 것 밖에 없는데.” 하시며 징글징글해져 버린 성인의 딸내미를 앞에 두고 아이 대하듯 말씀하신다. 일곱 살이 된 내 아이에게 늘 “한비는 영원한 엄마의 아기야.”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우리 엄마가 나를 영원한 아기로 생각하시리라는 건 상상도 못 해봤다. 엄마만큼 키가 자라, 이제 곧 마흔 살이 다 되어가는 나도 우리 모두도 영원한 엄마의 아기였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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