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니기리상 Sep 05. 2021

나만 진심은 아니었겠지.

카페. 30일 에세이 다섯 번째.


 혼자서 카페를 다니면 ‘내적 친분’이 쌓인다. 그 카페, 늘 앉던 그 자리에서 나만 알 수 있는 추억이 생긴다. 나는 1년 반가량을 도쿄의 키치조지라는 곳에서 지냈다. 내가 간 다음 해에 동일본 대지진과 3월의 때아닌 폭설이 있었고, 실연을 당해 무엇을 해도 위안을 받을 수 없이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그런 나를 위로해주었던 건 이노카시라 공원의 오래된 작은 카페였다. 이 곳에 오면 통창 너머로 푸르른 숲을 바라보며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다가 계산대로 가서 50엔,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600원쯤 되는 돈을 내면 계산대 앞에 놓인 유리병 안의 작은 수제 파이를 하나 사 먹을 수 있었다. 카페 안쪽의 검은 식탁엔 늘 활짝 피어있는 꽃이 가득 담긴 화병이 놓여져 있었고,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은 날엔 화병으로 시야가 가려지는 식탁의 구석 자리에 앉곤 했다. 비록 가난한 유학생이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작은 사치를 누리며 거칠어진 마음을 닦아냈다.

 사회 초년생이 되어 첫 월급을 받던 날엔, 퇴근 후 회사 건물 1층의 카페에서 두유라테를 마셨다.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거품이 한 달간 새로운 일상에 잘 적응하고 살았구나, 하며 나 자신을 토닥여주었다. 자주 가던 전철역 주변의 카페 앞 야외자리에서는 종종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저녁 대신 따뜻한 프레첼과 달콤한 바닐라라테를 마시곤 했다. 집 근처에 있던, 좌석이 네 개뿐인 작은 카페에서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을 기다리며 고구마라테를 자주 주문했다.


 지금도 다니던 카페들의 근처를 우연히 지나다 보면 지나간 추억들이 송송 떠오른다. 늘 앉던 자리, 늘 마시던 커피의 향, 그 곳에서 느끼던 당시의 감정들이 현재의 나에게 다시 다가와 마음을 자극한다. 그곳에서 위로받고 그 위로를 통해 잘 살아온 나날들이었다. 이노카시라 공원의 그 카페는 이젠 없어져 너무나 아쉽지만, 작은 위안을 주던 그 구석 자리에서의 모든 순간은 잊히지 않는다. 참 고마웠다.     








(이미지 출처 : Unspalsh)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엄마의 영원한 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