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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니기리상 Sep 17. 2021

순간의 기쁨, 놓치지 않을 거예요.

여유. 30일 에세이 열일곱 번째.


 여유라고? 커피를 한잔 내려 식탁 앞에 앉았다. 회사에선 동료들이, 퇴사 후엔 남편이 자꾸 나에게 여유를 가지라고 말했다. 바쁘디 바쁜 현대 사회에 사는 이들에게 그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잠시 멈춰 순간을 눈에 담아 보았다. 조금 전 우유를 데워 따뜻하게 커피를 내렸다. 뜨거운 김이 하얗게 퍼지고 이내 흩어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곤두섰던 신경이 누그러졌다. 어쩌면 생각하기 나름이겠구나, 싶기도 했다. 다시, 좀 더 몇 분 전으로 돌아가 보았다. 향기롭고 고운 분쇄 원두가 포터 필터에 소복이 쌓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탬퍼로 꾹 누르고, 에스프레소 기계에 꾸욱 힘주어 끼운다. 좋아하는 컵에 에스프레소 샷을 내리는 사이 우유를 데웠다. 스팀기 끝부분에 우유 표면이 닿게 하여 위아래로 살살 흔들면 우유가 뜨거워졌다. 그 사이 꾸룩꾸룩한 진동이 손으로 전달되는 게 기분 좋았다. 부드러운 우유 거품이 몽글몽글 올라온다. 진하고 고소한 내음을 풍기는 샷에 뜨거운 우유를 붓고, 우유 거품을 살포시 예쁘게 올려주었다.


 나에게 되물었다. 이제  여유 있게 살라니,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말이 되잖아 지금. 커피를 내린  분의 시간 동안 푸근해져버린 찰나의 순간. 그게 바로 ‘여유였다. 그런데 자리에 앉는 순간 잊어버렸잖아. 그래, 맞다. 우연히 생겨버린 시간이 아니면 여유를 가지는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유는 그저 마음속에서 슬며시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끔 스스로에게 잠깐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은  급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곤 한다. 커피를 내리던 시간, 문득 올려다본 파란 하늘, 살랑거리는 바람에  마른 빨래 냄새가 실려 오던 찰나의 순간을 나는 자주 잊고 살았다. 잠깐 한숨 돌리는 순간에라도 마음을 활짝 열면, 여유는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 나를 맞이한다. 순간의 기쁨을 놓치지 말라는 , 그게 여유를 가지란 말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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