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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강주 Apr 14. 2023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듣는 아침


새벽 5시에 어스름히 눈을 떠 꿈결인지 생시인지 살풋이 고민하다가 손길이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쥐면서 지금까지 잠자지 않고 있다. 여행의 여독이 덜 풀린 탓인지 잠을 자도 자도 졸렵다. 어제 하루 종일 자놓고서는 8시간만 깨 있다가 다시 잤으니 거진 나무늘보나 다름없다.


지난 4월, 남동생의 알러지가 심해져 결국 고양이가 분가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말하는 법이 서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남동생이라 울고 다투기도 하고 결국 삼 남매가 다 냉랭한 사이로 지낸 적도 있었으나 막내가 고군분투한 덕에 고양이를 잠시 지인의 지인 댁에 맡기기도 했다. 그 사이에 나는 인턴직이 종료되어 자취방도 열심히 구하고 결국 7월에는 애틋한 이산가족 상황이 종료되고 다시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다.


5명이 함께 살 때의 고양이는 나와 어떤 관계였나? 나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잘 쓰다듬어주는 집사 4 정도였기에 내가 책상에 앉아있을 때나 무릎 위로 뛰어와 엉덩이나 얼굴을 만져달라고 했는데, 솔직히 괴롭히기도 많이 괴롭혔으니 나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을 거다.

남의 집에서 - 초등학생 한 명과 미취학 아동 한 명과 함께- 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또 2개월 뒤에 다른 집에서 살게 되었으니 이사에 민감한 고양이로서는 쉽지 않았을 게 뻔한데도 뻔뻔하게 잘 버텨주어서 고마울 뿐이다. 우리 고양이는 가끔 한참을 바라보면 5살 막내 같다가도, 100번을 환생한 무언가 같다가도, 가끔은 나를 다 꿰뚫어 보는 존재 같다가도, 우리 시골할아버지를 닮은 인간 같은 얼굴로 어떤 생명체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러다가도 유산균을 많이 먹으면 죄다 토한다던지, 급하게 사료를 먹고 토한다던지 하는 모습으로 그래도 네가 고양이는 고양이구나, 싶게 만들지마는.


날이 추워져 도통 창문을 열 일이 없을 때에도, 고양이가 심심해하기 때문에 아침 6시에는 창문을 열어주었다. 그때는 아침의 찬바람이 방 안에 들어왔다. 아침 바람을 크게 들이쉬면 날카로운 아침바람의 결정이 폐에 들어오는 것 같은 따끔함이 있다. 고양이는 그런 걸 느끼지 못하는 걸까? 추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새도 한 마리 없이, 쥐새끼 한 마리 없이, 고양이 한 마리 없는 주택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나는 티비도 보고 책도 읽고 핸드폰도 하는데, 너는 대체 누구랑 연락하지도 않으면서 어쩜 그렇게 하루 한 시간 창문 보는 것으로 묘생을 살아갈 수 있니? 이 좁은 방 안에서 내가 주는 손길만이 너의 세상의 전부인 거니? 그런 생각을 하니 남동생이 군대에 가자마자 고양이를 다시 데려간 엄마 아빠가 야속하지만서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가는 지금 내 자취방보다도 크고 창도 여러 군데에 있으니 말이다. 다만 엄마 아빠가 우리 고양이 양치는 잘 시켜줄지 간식도 적당히 줄지 엉덩이는 잘 두드려줄지, 얼굴의 어느 부위를 긁으면 좋아할지 모르는 것 같아 걱정이 되는 마음도 있다.


고양이 없이 잔 하룻밤만에 나는 고양이 생각을 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고양이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는데 우리 고양이를 키우다 보니 우리 고양이는 참 괜찮은 고양이 같다는 자부심 같은 게 생겼나 보다. 다들 그런 마음으로 고양이를 키우고 배우자도 만나고 직업도 갖는 걸지도 모른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계속 들여다보면 예쁘다는 시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어디 거창한 곳이 아니다. 창 하나 열어놓고 잠시 앉아있으면 더운 바람이든 시골 바람이든 가을 아침의 쌀쌀한 공기든 분명 통하기 마련이다. 고양이의 비단결 같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다닥 다닥 붙어있는 서울의 주택가 사이로 동이 트고 새가 우는 소리를 듣는 아침이 내 인생에 잠시 있었다는 걸 기록하고 싶다. 어쩌다 보니 독일에서부터 외로운 인생을 계속 살게 되는 것 같긴 하지만 또 즐겁게 살아가야지 싶다. 창을 활짝 열고 커피 한잔 마셔야겠다. 다음 곡으로는 아이유가 부르는 가을 아침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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