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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강주 Apr 10. 2023

갑자기 다정한 사람이 좋은 일기

이유 없는 다정함이 때때로 큰 부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쩌면 나는 남이 베푸는 친절함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누군가가 나에게 다정할 때마다 빚이 하나 둘 늘어난다고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가끔은 엄마가 나한테 다정할 때도, 엄마는 왜 나한테 그렇게까지 잘해주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다정함은 학습될 수 있을까? 혹은 유전될 수 있을까?


몇 해 전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 후에는 독서실을 가면서까지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다. 내 커리어에 그다지 중요한 시험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뭐에 홀린 건지 꼭 그 시험을 합격하고 싶었다. 남들은 1년 넘게 준비한다는 시험을 무슨 자신감인진 몰라도 두 달 남짓한 시간을 할애해서 공부했고, 회사를 그만두고 복학을 하고서도 틈틈이 준비했다. 시험 날은 무척이나 쌀쌀하고 흐렸다. 시험을 망친 건지 잘 본 건지 알 수가 없었는데 다만 집에 가서 얼른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시험을 치고 고사장을 나왔는데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추울까 챙겼던 담요를 뒤집어쓰고 정류장에 가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핸드폰을 보니 친구한테 연락이 와 있었다.


잘 본 건지 모르겠어. 어려웠어. 연필로 대충 쓰고 펜으로 덮으라 고생했어. 따위의 말을 했을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집에 도착할 즈음 친구가 우산을 들고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은 선명히 기억이 난다. 아무리 가까운 곳에 산다고 한들 늦잠을 자도 모자란 주말에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려주다니.. 나는 비를 맞을 심산으로 가족한테도 말을 안 했는데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를 보고서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녹아내리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꼈다. 가까운 사람의 다정함이 온전히 다정함 그 자체로 느껴지는 것은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조차도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들 때 다른 각도에서 티끌 같은 긍정적인 점들을 긁어모아 칭찬을 해주는 따뜻함, 해외에 있을 나를 위해 같은 필체로 4명의 편지를 써주는 세심함,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내가 읽으면 좋아할 것 같은 책을 선물해 주는 다정함 들은 물질적인 득이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언제든 찾아 꺼내볼 수 있는 사진과 같은 힘으로 나에게 남아 좋다. 가족도 아닌 타인에게 따스함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되어서 실제로 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지가 내 평생에 해결되지 않을 궁금함이다. 이렇게 인류는 사랑을 하고 연을 맺으며 살아온 걸까? 득이 되지도 않을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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