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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니연 Apr 24. 2020

운동하는 여자 (Girls Tennis)

여자들을 위한 테니스 입문 이야기

나에게 스포츠란


축구와 암벽등반을 하면서 새 삶을 찾았다는 또래 여자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원래 운동에 관심이 많았겠지’와 ‘소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때도 단과대 여자 축구단이 경기에 져서 울고 불며 서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뭐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했었다. 그만큼 나는 운동 전반에 관심이 없었다. 스포츠 경기에서의 승부욕을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타고난 저질 체력이었기 때문에 격한 운동은 앞으로 내 인생에 없을 거라 스스로 단언했다.

공의 원리요?

그러던 내가 테니스 코트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또 다른 성공스토리가 아니다. 실력면에서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요한 건 내가 그동안 ‘스포츠’에 대해 커다란 오해를 품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된 점이다. 코트장 한편에서 벽치기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웬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공의 원리를 알아야지!" 하고 나에게 호통을 치셨다. 당시에는 난데없는 역정에 분하기도 하고 대체 무슨 소리인가 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 지금의 나에게 스포츠란 그런 오해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여자로서 운동을 한다는 것

#운동하는여자

우리는 ‘생활체육’이라는 말에 익숙하지 않다.

공의 원리는 잠시 접어두고, 여성에게 스포츠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몸매를 가꾸는 것인가? 우리는 ‘생활체육’이라는 말에 익숙하지 않다. 특히 2000년대 교육과정을 거친 여자라면 체육은 종종 찾아오는 자유시간 정도였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땡볕이면 귀찮고, 실내라면 나쁘지 않은 정도. 내 생활의 일부로서 스포츠를 이해할 기회가 일반 학생들에게는 많지 않았다. 많은 경우 여자들에게 운동이란 대학에 들어가 시작하는 다이어트가 그나마 진지하게 접하는 첫 번째 운동(종목이 무엇이든)이고, 30대에 살기(?) 위해 다시 운동을 시작하는 게 두 번째라는 생각마저 든다.


남자들은 어떻게 저렇게 금방 배우지?
출처: 클럽밤즈 (@club_bomz)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해 괴로웠던 질문이 있다. ‘남자들은 어떻게 저렇게 금방 배우지?’라는 것이다. ‘당연히 타고난 운동신경이 다르겠지’라 한다면 그건 또 오산이다. 헤매는 남자 친구들도 꽤 많이 있다. 또 몇 개월 만에 급성장하는 여자들도 여럿 보았다. 다만 상대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더 빨리 실력이 느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여러모로 나는 그들만큼 테니스를 즐기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답답했던 것이다.


그런데 전혀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이유를 먼저 말하자면 여자들은 앞서 말했듯 생활체육을 덜 접해봤기 때문이다. 똑같이 배워도 결과가 다른 게 한쪽이 운동신경이 없기 때문이라는 건 합리적 추론이 아니다. (물론 타고난 사람도 있다) 일반적으로 운동 감각을 깨우칠 기회가 적었다면 남녀 할 것 없이 스포츠의 기본 원리를 습득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남자들이 빨리 배우는 이유는 아무래도 공(축구공, 농구공, 야구공)을 놀이로서 더 일찍 접해봤을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이유

코치들의 지적도 비슷했다.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테니스를 그만두는 여성 회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여자라서 스포츠에 흥미가 빨리 떨어지는 것이란 설명이 충분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공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인내해야 할 시간이 더 긴데, 그 비율이 여자들이 많다는 것. 공에 숙달돼 있지 못할수록 포기할 확률이 높아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이러한 생활 스포츠에 대한 친숙함은 자신감과 실력 향상이라는 요소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테니스에 입문했을 때 고비를 넘기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1. 친숙함 그리고 자신감
공이랑 안 친해서

운동을 할 때 자신감은 상당이 중요한 요소다. 같은 몸이라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것도(?) 없는데 자신감을 갖고 테니스를 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하는 것에 비해 실력이 금방 늘지 않으면 우울할 수 있다. 생활 스포츠를 충분히 접하지 못했다면 더 그렇다. 한 친구는 내게 자신과 똑같이 테니스를 시작한 남성 회원이 일취월장하는 것을 보고 자기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투덜거렸다. 계속 말했지만 시작이 같다 해서 같은 끝을 맺을 수는 없다. 공이랑 안 친해서 그렇다. 처음부터 소질이나 재능을 논하지는 말자. 어릴 적 아파트 단지에서 몇 시간 동안 벽에 공을 차고 놀았다면, 캐치볼을 몇 번이라도 더 해봤다면 우리는 분명 지금과는 매우 달랐을지도 모른다.


2. 더 멀리 있는 고비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는가?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내 고비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일주일에 2~3번씩 두세 시간 정도 사람들과 랠리를 하는 시간을 가져볼 것을 추천한다. 나와 같은 저질 체력에 생활 체육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면 그 고비는 아마도 더 멀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 궤도까지는 타고난 재능보다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는지가 더 큰 요인인 것 같다. 체육인의 몸이 아닌 내가 꾸준히 랠리를 하며 달라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스포츠가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과정 또한 큰 고비를 뛰어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경쟁 상황의 부재
경쟁 상대 = 실력 상승의 기회
출처: 클럽밤즈 (@club_bomz)

심리적 기제는 성공적 체육 활동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승부를 통해 얻게 되는 주변의 칭찬, 격려 등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과 게임을 해 보는 상황에 노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내 주변은 범접할 수 없이 잘 치거나 아니면 안타깝게도 서로 답이 없는(?) 사람들로 양분됐다. 몇 개월은 헤맸지만 같이 칠 사람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상대가 없으면 실력을 올릴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실력이 제자리에 머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고비를 넘기기 위해 필요한 것들


1. 동호회 가입 또는 단체 레슨 참여
공 보는 법을 기르자
출처: 테니스밤 (@tennis_bomb)

클럽 가입이 가장 좋겠지만 초보자라 어렵다면 단체 레슨을 통한 랠리와 게임을 병행할 것을 추천한다. 공과 친숙해지는 시간을 일정기간 쌓아봐야 내 잠재력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하단 링크 참조)

https://brunch.co.kr/@onion/16


단체 레슨에서는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 다양한 게임을 접할 수 있다. 또 여러 레벨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며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 여러모로 유리한 환경이다. 희망적으로 말하자면 타고난 운동신경이 없더라도 노력으로도 공을 보는 법을 기를 수 있다. 때로는 사람들을 보고 배우는 게 개인 레슨보다 효과적이다.


2. 테린이가 임하는 자세
할 수 있다

내 태도도 중요하다. 고비를 넘기는 순간은 노력으로 버텨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테니스를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실력과 상관없이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자. 주변에서 예상한 결과에 영향을 받고, 그것이 실제로 내 실력이 되어버려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일정 수준의 고비를 한 번은 넘겨봐야 내가 정말 적성이 있는지, 없는지 말할 수 있다. 주변의 판단을 본인의 한계점으로 삼지 말자.


3. 코치와의 궁합
나의 고비를 아는 자
출처: 테니스밤 (@tennis_bomb)

코치를 잘 만나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코치의 실력이란 기술만이 아니라 동기부여와 흥미 유발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인 것 같다. 어떤 코치는 포핸드만 6개월 백핸드만 6개월 가르쳐 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코치를 만났다면 금방 포기했을 것 같다. 자세만 배워서는 재미가 없다. 게임도 시켜보고, 테니스라는 운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해시켜 줄 수 있는 코치를 만나야 한다. 계속 말한 각자의 ‘고비’가 어디쯤 인지 알고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면 가장 이상적이다.



스포츠라는 권리

모든 사람을 위한 스포츠
Article I
Every individual shall have the right to participate in sport.

1975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채택된 ‘모든 사람을 위한 스포츠 유럽 헌장(Principles for a Policy of Sport for All)’ 제1항이다. 모든 개인이 스포츠에 도전할 권리를 가졌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건강을 위해서는 누구나 체육활동을 할 수 있게끔 그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 신체와 정신의 잠재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권리임을 이해해야 한다. 삶의 질은 그러한 노력을 통해 높여 나갈 수 있는 자율적인 부분이다.



운동하는 여자가 멋있는 이유

출처: 테니스밤 (@tennis_bomb)

테니스는 ‘계단식’으로 는다고 말한다. 정체되었다가 한 번씩 급성장한다. 나는 요즘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잘 공감이 되지 않는다(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지만 이제서야 할아버지의 호통이 이해가 된다. 초반의 나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테니스에 임했다. 공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내가 몰랐던 권리를 찾은 것이기도 했다. 이는 비단 테니스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운동하는 여자가 멋있는 이유는 자신의 권리를 찾았기 때문임을 더 많은 친구들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현명하게!

혹여 새로 시작하거나, 테니스를 계속할지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예견된 미래를 알고 뛰어든다면 조금 더 현명하게 스포츠를 할 수 있지 않겠냐고. 그러니까 기죽지 말고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한계에 드라이브를 걸어보자. 언젠가 운동에 푹 빠진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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