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숲

by 기욤하우어



도시의 주차장은 마치 숲 속의 빈 터와 같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 주차선을 완전히 무시한 채 엉뚱한 방향으로 세워진 차가 있다면 어떨까? 숲에서 혼자만 햇빛을 더 받겠다고 옆 나무의 자리를 빼앗듯, 그 차주의 행동은 처음부터 타인을 고려하지 않은 모습처럼 보인다.



며칠 전 온라인에 올라온 사진도 그랬다. 다리를 다쳤다는 이유로 일반 칸 두 개를 차지해 주차했다는 내용이었고, 차주는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숲의 규칙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약한 나무라도 주변을 다 밀어내며 자라지는 않는다. 자신의 처지가 어렵다고 해서 공동의 공간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곧바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차주의 사정을 두둔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의 행동 하나가 주차장을 이용하는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바람에 흔들린 한 가지가 주변 가지들까지 모두 흔들리게 만드는 것처럼, 작은 무질서가 전체 질서를 어지럽힌다.



게다가 이런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판단에도 영향을 준다. 누군가는 차주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왜 나만 규칙을 지키고 있어야 하지?’라는 불편함을 느낀다. 숲에서도 한 나무가 무질서하게 뻗으면 그 주변 생태계가 틀어지기 마련이다. 어떤 나무는 더 많은 비를 맞지 못하고, 어떤 나무는 햇빛을 잃는다. 한 존재의 선택이 전체의 균형을 흔드는 것이다.



작은 균형들이 모여 전체 질서를 만든다. 그런데 차주의 행동은 이 조용한 균형을 흔드는 작은 돌멩이와 같다. 돌멩이가 잔잔한 물 위에 떨어지면 물결이 퍼지듯, 그 영향은 주변 모두에게 불편을 가져온다. 공공 공간에서 한 사람의 행동은 곧 공동체의 문제로 이어진다. 규칙은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숲 속에서 자신만 살아남겠다고 주변을 짓밟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구나 사정은 있을 수 있지만, 공존의 공간에서는 그 사정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주차선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은, 마치 작은 가지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오만과 같다. 그러나 가지 하나가 흔들리면, 그 힘은 연결된 곁가지와 그 아래 작은 생명에게까지 전달된다. 공존의 숲은 배려를 지킬 때만 건강하게 자란다. 그 숲을 망가뜨리는 행동은 언제나, 규칙을 무시한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