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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어당 Feb 25. 2021

네팔 히말라야 ABC 여행기 #9

구 일째  촘롱-시와이-포카라

구 일째

촘롱-시와이-포카라 9.3km 4시간 32,158걸음


이들의 삶 또한 나와 같으리!

  촘롱의 긴 언덕을 내려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길을 걷는다.

지난 8일간의 여정이 내 삶에서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지워지지 않을 낙인으로 남았다.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기억을 몸에 새긴다. 난 이 기억을 가슴 깊이 감추어 두고 발바닥에 새겨 나를 떠받칠 것이다.     


오늘은 힘껏 빠른 속도로 걷는다. 한참 길을 걷다 보니 저 높은 산 중턱 집들에 눈이 간다. 지금 걷는 이 길보다 최소 500m는 높이 있는 마을들이다. 저 높은 곳에 논을 만들고 집을 지어 사는 모습이 참으로 경이롭다.


또 그들의 삶이 궁금하다.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으로 자라고 자연에 순응하고 때론 개척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삶일 것이다.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 태어난 환경도 바꾸기 어렵다.


이들은 왜 높은 곳에서 살게 되었을까? 먼 조상이 전란을 피해 이곳으로 왔을까? 아니면 자연이 좋아서? 먹을게 풍족해서 이주했을까? 분명 그때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조상이 살던 대로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 대부분 인간은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내가 한국에 태어나고 저 이가 네팔에 태어난 것이 다를 뿐 인간으로 행복과 고통은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불행과 행복이 손에 쥐고 있는 한 줌의 경제력에 있지 않았으면 바람이 크다.


  저 높은 곳을 바라보고 올라가면서 내려올 것을 걱정하는 이는 여행자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그저 오르락내리락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일 뿐이다. 안나푸르나를 오르며 내려갈 것을 걱정하던 것이 부질없다. 오늘처럼 내려갈 때가 되니 내려가는 것인데 미리 사서 한 걱정이 안타까운 하산길이다.


추수가 끝난 이 다랑이 논길을 걸으며 나도 깊어질 가을과 다가올 겨울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 생각이 이때뿐 그때 가면 그때 맞춰 살고 있으리라! 생각과 삶은 다른 부분이다. 이렇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구별 여행자 대부분의 시간인 것이다.


  아침부터 서둘러 나선 길에 점심도 거르고 걷는다. 그저 시와이가 인생의 종착역인 것처럼 걷는다. 그리 걸어 이른 오후에 시와이에 도착했다. 며칠 만에 너른 길을 만났다. 너무 넓어 어디로 걸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저 멀리 지프가 여러 대 서있고 상점들이 보인다.


먼저 도착한 찌라가 무엇을 사고 있다. 가이드는 지프를 잡았다고 기경과 상원에게 타란다. 나도 짚을 선택 했다. 지프 중 가장 최신형처럼 보이는 두 대를 골라 가이드에게 흥정해 보랬더니 들었던 가격의 거의 2배를 부른다.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나도 거의 네팔리다. 원래 가격에 가지 않으면 난 걸어간다. 포카라까지! 그러던 차 찌라가 코코넛 비스킷과 콜라를 내민다. 안나푸르나의 일행이 된 우리는 나누어 먹으며 말없이 미소를 짓는다.


  콜라를 마시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ABC에서도 콜라를 판다.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몇몇 사람은 신기해했다. 나도 콜라를 보고 신기했던 적이 있었다. 1994년 가을 처음 지리산을 종주할 때 연하천 산장의 커다란 빨간 고무 대야 속 흐르는 샘물로 차가워진 빨간 캔콜라를 보고 한번 놀랐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실 때 그 시원함과 달콤함에 두 번 놀랐고, 계산할 때 가격에 세 번 놀랐다.


그때부터 난 콜라를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불렀다. 돈을 주면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자본의 상징적 가치를 지닌 물건이기에, 안나푸르나 이곳에서도 자본의 심벌은 덩그러니 텅 빈 빨간 껍질만 남아 나뒹군다.


  먼저 상원, 기경, 찌라가 흥정을 끝내고 가이드들과 차를 타고 포카라로 향했고. 나도 적정한 가격에 흥정하여 지프는 타고 산 아래를 향해 달린다. 구불구불한 내리막길을 따라 커다란 돌을 넘고 움푹 팬 구덩이를 지나 한참이나 내려간다. 저 멀리 트러스 구조의 익숙한 다리가 나온다. 첫날 팀스와 퍼밋을 확인받았던 비레탄티이다. 오늘 이곳은 정체 중이다.


오르는 차와 내려가는 차가 뒤섞여 있고 팀스 퍼밋을 확인받느라 가이드, 포터와 트래커가 긴 줄이 섰고 북적북적하다. 다리를 건너 상점 옆을 지나는데 바나나가 보인다. 힐레를 오르며 먹었던 고구마처럼 생긴 뭉툭하고 짧은 네팔 바나나다. 팀스와 퍼밋에 도장받으러 간 가이드를 기다리느라 차가 멈추자 바나나를 한 손 샀다.


기경과 상원 찌라가 탄 차를 찾는데 그새 가버렸다. 그들에게 네팔 토종 바나나를 맛 보여 주려 했는데 많이 아쉽다. 다시 차는 달려 나야폴에 올 때처럼 비포장 같은 포장도로를 달린다. 도로를 넓히고 포장하는 공사가 이곳저곳에 있다. 저만치 안나푸르나가 멀어진다. 그렇게 고개를 넘고 여러 굽이를 돌아 포카라로 향한다.


가이드가 사랑 곳에 가려보려냐고 묻는다. 난 걷기 싫어서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차로 갈 수 있단다. 그래서 웃으며 가보자 했다. 차는 포카라로 바로 가지 않고 사랑곳으로 간다. 사랑곳은 높은 언덕이다. 위에 서니 페와 호수와 포카라 전역이 보인다. 이곳에서 보니 포카라가 엄청 큰 도시다. 난 포카라가 우리 고향 읍소재지 정도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크다. 이제 알았지만 네팔의 제2도시란다.     



다시 포카라!

  사랑곳에서 내려오는 길에 스마트폰 앱을 통해 호텔을 찾는다.

첫째 하고 싶은 것은 씻고 싶다. 정말 깨끗이 씻고 싶었다.

둘째는 먹고 싶다. 내 입맛에 맞는 것을

세 번째 마지막으로는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찾은 호텔은 폐와 호수 센터포인트 근처 번화가에 있는 미들 패스 앤 스파 호텔이다. 스파라 해서 난 뜨거운 물이 있는 온천이란 생각에 선택했다. 그러나 온천은 없었다. 그냥 건식 사우나다. 객실에 들어가 짐을 풀고 바로 샤워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머리를 여러 차례 감고 몸을 따뜻한 물로 몇 번이나 닦으니 행복하다. 뜨거운 물줄기가 온몸을 감쌀 땐 황홀하다. 히말라야의 좋은 기억은 남고 피로는 풀리는 느낌이다. 그저 사람은 그 순간에 매몰되나 보다. 샤워 후 몸무게를 재보니 체중이 10kg 정도 줄었다.


  머리를 말리며 호텔 창밖을 보니 페와호수가 보인다. 산행 기간 생긴 빨랫감을 찾아서 방수팩에 담아서 로비로 내려온다.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난 3층 객실인데 계단은 4층 계단을 내려간다. 다시 보니 네팔은 우리가 말하는 1층은 그냥 0층이고 우리의 2층이 1층이다. 생각해보니 네팔 식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문화를 접할 때 상대를 인정하고 내 방식을 생각해보는 것이 상대주의적 관점 이리라. 빨랫감을 프런트에 맡기고 무작정 호텔을 나선다. 무심코 페와 호수를 향한다.



  조금 내려가니 한자 간판이 보인다. 산촌(山村) 야마무라! 일식집인가? 하고 있는데 누가 말을 건다. 네팔 사람이다. 간판을 보니 이발소이다. 나보고 이발을 하란다. 웃으며 손사래를 치고 아래로 내려가니. 삼거리에 파출소 같은 게 보이고 길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우뚝 서 있다. 여기가 센터포인트란다.


그리운 고향의 맛 켄터기 프라이드 치킨과 펩시

왼쪽으로 한참 가니 KFC가 보인다. 안나푸르나에서 누가 내게 그랬다. 페와 호숫가에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집이 있다고 바로 그곳이다. 들어가려니 제복을 입고 무장한 듯한 경비원이 문을 열어준다. 치킨 한 조각에 200루피 정도여서 두 조각과 음료를 하나 시켜 2층으로 올라가니 몇몇 네팔 사람들이 치킨과 햄버거를 먹고 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창밖 거리를 구경하며 두 조각을 금세 먹어버렸다. 점심을 거른 위력과 오랜만에 맛본 기름짐에 감격해서 일 것이다. 그리고 페와 호수를 향한다.      



이제 사람들 사이를 걷는다. 새로운 인연의 시작!

  상점들이 폐와 호수를 둘러싸고 있어 입구를 찾기가 만만치 않다. 몇 골목을 헤매고 찾은 페와 호수에는 사람이 정말 많다. 오늘이 토요일인데 네팔 휴일이란다. 많은 네팔 사람들이 호숫가에서 가족과 연인과 친구, 아니면 그룹으로 놀며 먹거리를 즐기고 있다.


천천히 왼쪽 댐사이드 쪽으로 걷는다. 안나푸르나를 다녀와 무거운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를 신고 걸으니 편하기도 하고 배도 불러 부러울 게 없다. 그렇게 호수와 사람들을 구경하며 걷는다. 좌판 장신구 파는 곳에 눈길을 끄는 게 있어 앉아 구경하는데 파는 여자는 아르헨티나에서 왔단다.


네팔에는 현지인만큼이나 많은 외국인이 있다. 트래킹 도중 만나 국적만 해도 십여 곳이 넘는다. 오스트레일리아 여자, 미국 가족, 이탈리아 노인, 싱가포르 연인, 중국 청년들, 프랑스 여자, 일본 여자, 벨라루스 청년, 말레이시아 단체, 이스라엘 청년들, 한국 남자 여자 등등 국적이 다양한 만큼이나 트래킹 방식도 달랐다. 이들과 걸으며 인사를 나누고 잠시 함께 이야기하고 헤어지고 반복하며 걸었다.


  저 멀리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재미난 구경거리가 있는 것 같다. 가까이 가니 빙 둘러선 사람들 가운데 한 남자가 서서 뭐라고 떠든다. 약장산가 하며 다가서니 두 손에 피를 묻혔다. 조금 섬뜩한데 갑자기 내 쪽을 향해 위협적 손짓을 하며 고성을 지른다.


외국인인 나 때문인가 하는데 아닌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남녀 한 쌍이 보이고 그중 남자는 약장사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치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말리며 밀치고 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데이트하던 남자가 이쪽을 보고 뭐라 했나 본데 그것으로 시비가 생겨 서로 싸움 중이다.


두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큰소리가 난무하더니 이내 손에 피를 묻힌 남자가 군중 가운데서 다시 무언가를 진행한다. 그러더니 칼을 들고 아래 검은 천속에 무언가를 찌른다. 비명이 터져 나온다. 검은 천 안에 사람이 있었다. 아마도 머리 부분을 칼로 찌른 듯하다. 하늘을 향해 든 두 다리를 떨며 지르는 큰 비명에 모두를 놀라게 한다.


그러더니 손에 칼 든 남자가 또 군중을 향해 피범벅이 된 손을 흔들어 대며 두 눈을 부릅뜬다. 분명 탱화에서 보던 야차 같은 모습이다. 이 모습에 어린아이 몇 명이 크게 동요한다. 그리고 이 사람의 말이 무엇이든 믿을 표정이다. 그 모습이 섬뜩해 자리를 뜬다.


조금 멀어져 그 군중을 바라보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중국시장에서 원숭이 재주를 부리며 약을 파는 약장사 이야기가 떠오른다. 1700년대 중국의 시장과 비슷한 모습의 데자뷔이다. 무엇을 팔기 위해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해 동원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고 또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무심코 행동하던 것이 오래된 문화적 관행들이다. 누구를 평가하고 나를 되돌아보는 관점은 아주 많이 오래된 인간의 관습적 행위들의 총체이다. 저 약장수나 군중이나 나는 그 관습적 행위의 결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


  네팔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문화의 원형에 가까운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탱화에서나 볼 수 있는 얼굴에 사람들이 여기에는 살고 있고 불화에 화려한 색채와 복장 등이 아시아 문화의 원형의 한 형태로 보인다.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 산맥을 보며 불교에서 말하는 세 번째 지옥인 한빙지옥을 떠올린다. 부모께 불효하고 사람의 신의를 배반하면 가게 된다는 곳이다. 불교의 발상지가 이곳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으니 아마도 저 만년설의 히말라야를 보며 한빙지옥의 구체적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저 높은 히말라야를 넘어 한국까지는 비행거리로 5940km나 떨어져 있어 서로 접촉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서로 닮은 것들이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 닮은 것과 주어진 환경에 따른 적응방식이 비슷해 일수도 있지만, 그 먼 거리를 오랜 시간에 걸쳐 문화적, 종교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서로 교류했다는 것이 더 확실한 답인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 하며 구경하다 돌아오는 길에 야마무라 앞을 다시 지나는데 이발소 주인이 또 부르며 이발하라는 손짓이다. 웃으며 돌아서는데 야마무라 한자 아래 작은 한글이 보인다. 다람쥐! 함께 읽으니 “산촌 다람쥐”다. 헛한 웃음이 나온다. 한국음식점을 오해했다. 자세히 보니 마당이 있는 꽤 큰 식당이다. 아직 손님들이 없어 지나친다.


  혼자 빙그레 웃으며 호텔로 향하는데 카톡이 온다. 여기 포카라는 통신이 잘된다. 네팔에서 산 유심은 안나푸르나 트레킹 구간에서 무용지물에 가까워 롯지에 와이파이를 사용해야 했지만 역시 도시라서 잘 된다. 참 신기하다. 사람은 적응력이 참 빠르다. 이렇게 한국인의 특유의 성향이 발휘된다.


ABC에서 만나 한국 사람들 단톡방이 개설된 것이다. 오늘 저녁 모두 모여 한국식당 놀이터에서 삼겹살을 먹자고 약속해 시간을 정하는 중이다. 하지만 센터포인트와 놀이터는 상당히 멀었다. 걸어서 30분 이상 택시로 10분 정도 가야 한다. 모두 피곤한 상태라 가까운 곳을 찾아서 방금 본 “산촌 다람쥐”를 추천한다.


  7시에 산촌 다람쥐에 갔더니 마당 한쪽에서 몇 사람이 솥뚜껑에 불을 피우고 있다. 남자 셋 여자 둘이다. 한 남자는 덩치가 크고 특이한 안경을 쓰고 있다. 네팔 사람 같기도 하다. 또 한 남자는 젊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전형적인 한국 남자와 여자들이다.


  메뉴는 소주와 맥주 등과 삼겹살, 라면, 청국장, 냉면 등 한국에서 먹는 음식 대부분이 있다. 다만 소줏값이 우리보다 세 곱절이어서 취하기 힘들 수 있겠다. 주인은 40대 후반의 부부로 젖먹이 갓난아이가 귀엽다.


안나푸르나에서 만난 우리 다섯은 삼겹살을 굽고 맥주로 건배하며 ABC 트래킹을 완주를 자축한다. 트래킹 할 때 느낌과 힘들었고 행복했던 이야기로 웃고 떠들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간다. 나와서 한잔 함께 하잖다. 자리를 옮기니 포카라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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