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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어당 Feb 09. 2021

삼겹살! 그 기름진 맛!

불 앞에서 느끼는 원시적 연대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가 삼겹살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먹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현대에 들어와 즐겨먹기 시작했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또한 어느 이야기 하나  정통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중 1970년대 돼지고기를 수출하고 남은 삼겹살을 먹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한 것 같다.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소는 대표적으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인데 삼겹살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지방의 그 기름진 맛이다. 불판 위에서 붉고 하얀 고기가 점점 갈색으로 변하며 구워져 가는데 여기에 기름기까지 더해져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처럼 지글지글거리며 튀겨지듯 익어가면 많은 사람들은 젓가락에 힘을 주고 고인 침을 삼킨다.


삼겹살은 혼자 먹는 음식이 아니다. 반드시 여럿이 함께 모여 먹는다. 삼겹살을 나누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감정적 교류를 하며 때론 감상에 젖기도 한다. 물론 요즘은 혼식이라 하여 혼자 즐기기도 하지만, 삼겹살의 시작은 혼자가 아니었다. 최소한 3-4명은 모여야 선택할 수 있었던 메뉴이다. 대중화 시작되어 즐겨먹기 시작했던 70-80년대에는 직장동료, 친구나 가족 등이 몇 명은 모여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경제적 작은 여유가 생기며 식생활에 변화를 가져왔고 마침, 단백질중 돼지 삼겹살이 먹을만한 저렴한 가격이었기에 선택에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먹을 때 필요한 것은 작은 불과 불판 그리고 소금, 참기름, 된장 등으로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어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고, 불판과 고기만 준비해주면 손님들이 알아서 구워 먹으니 인력도 필요치 않아서 식당에서도 삼겹살은 수입을 올리기 좋은 식재료였을 것이다. 삼겹살 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소주 등 술이 함께 했기 때문에 부수적 수입이 또한 많아 꽤 괜찮은 메뉴였으리라.

  작은 불판이 잘 달구어지면 흰색과 붉은색이 겹쳐있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식재료가 치익치익 올라가고 익어간다. 갈색으로 잘 구워지면 그 기름진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더불어 여기에 빠지지 않은 것이 알코올이었다. 기름기 가득한 입안을 독하디 독한 소주 한잔으로 씻어내면 그날의 피로까지 씻겨 내려가는 기분으로 “캬~~~”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삼겹살의 약진은 약 50년을 넘어 아직도 외식 메뉴의 첫 번째를 찾지 하고 있다.
또 산업화 시기 월급봉투를 받는 날이면 가족들을 위해 예전 아버지들이 장날 사 오시던 고등어자반 같은 신문지에 싼 뭔가를 한 손에 쥐고 불콰한 얼굴로 귀가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장의 작은 성의를 보였던 것 중 삼겹살은 아버지의 어깨와 인기 꽤 올려주었을 것이다. 도시 주택의 상징이었던 연탄불에 잘 구운 삼겹살 몇 점에 아이들은 눈이 똥그래지고 고기를 굽는 어머니의 등은 모처럼 펴졌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오랜만에 느끼는 따스함과 포만감은 별빛 잦아드는 새벽 기차에 보퉁이 하나 들고 몸을 싫던 서러움을 조금은 달래주었다.

  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 행위는 원시 인류가 불의 발견 때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자연 발화에 산불 등으로 불에 익은 고기를 먹어본 적도 있었겠지만, 불을 발견한 후 날 것을 먹던 인류는 사냥 후 모닥불 앞에 모여 고기를 굽고 추위를 달래는 것으로 삶이 변화되었다. 고기 굽는 냄새는 동굴 이곳 저곳에 퍼져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 것이고 원시 인류는 이렇게 고기를 익혀먹으며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변화는 먼저 몸에 영향을 주었다. 익혀진 고기는 부드러워 소화하기 좋았고 같은 양에서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할 수 있었으며, 불에 의해 분해된 즉 익혀진 다량의 단백질 등으로 영양공급 좋아져서 뇌의 용량이 더 커지고, 근육도 강화되어 직립보행에 더 적합하게 진화할 수 있었다. 또한 집단적인 효과는 사냥후 먹기에 바빴던 행위가 불 앞에 모여 함께 조리된 음식을 즐기는 공동체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사냥한 고기를 불 앞에 모인 가족이나 친구끼리 구워 나누며 먹으며 기름진 고기 맛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공동체가 함께 하면 더 많은 동물성 식재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다.  

  되돌아보면 머나먼 옛날 원시 인류가 잡식성으로 식물을 채집하고 동물을 사냥하며 한 가지 한 가지 현재 인류의 모습을 갖추어 갈 때 즈음 생존과 번식의 가장 중요한 것은 신체적 성장과 집단의 강화였다. 사나운 맹수들과 경쟁 인류인 다른 유인원들과 비교해보면 인간의 신체적 조건은 매우 열악했다. 현대 인류인 우리가 사자나 호랑이는 물론 심지어 집에서 키우는 개까지도 한 사람의 힘으로 제압하기는 역부족인 것처럼 말이다. 고인류 들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고 이를 지능에 의한 도구의 발견과 특정한 신체적 발달로 극복해 나갔다. 그 결과 직립보행으로 두 손의 자유를 얻었고 두뇌를 키워 지능을 높이고 빠르게 달리기 위해 몸의 털들을 버렸다.  

  맹수들은 야간 시력이 뛰어나 밤에 사냥하는데 초기 인류는 그들과 경쟁이 되지 않았고 사냥감이 되기 일 수였을 것이다. 그래서 낮 시간을 활용하여 움직였는데 그곳은 매우 더웠다. 그 환경에서 달리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다 보면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갔고 이를 극복하고자 몸의 털들을 차츰 버리게 되었고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다. 또한 불을 이용한 음식의 등장은 일대 혁신이었다. 날로 먹던 고기와 곡식 등을 불에 익히면 부드러워져 소화도 빠르고 분해가 빠르고 작게 쪼개서 영양소 흡수 또한 잘되었다. 또한 익힌 음식은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었고 불을 이용한 요리의 등장을 예고했다. 같은 양의 고기와 곡식을 먹더라도 인류가 흡수하는 영양소는 종류가 다양해졌고 양이 훨씬 많아 이 잉여 단백질 등을 활용하여 두뇌를 크기를 키우고 근육의 양을 늘리고 지방 저장하여 생존력을 높였다.


  갑자기 삼겹살 이야기하던 중 이리 거창하게 몇 만년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할까? 싶지만, 그때를 되돌아보면 현재 우리 행동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다. 대부분 동물들은 사냥후 그곳에서 바로 취식을 하지만, 인간들은 좀 달랐다. 그들은 근거지로 사냥감을 옮겨와 가족이나 친족 등 집단의 구성원들과 함께 먹었다. 그 대표적 흔적이 고대 인류 주거지 인근에 있는 조개껍질 무덤 패총들이다.  동굴이나 움집에 모여 함께 사는 동료들을 위해 무거운 사냥감을 옮겨와 해체하고 일정 부분을 나누고 사냥에 함께한 이들과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여 고기를 함께 먹으며 연대감을 드 높였을 것이고, 한 가족에 가장으로 유대감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이때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작은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몇몇의 사냥꾼들이 모여 앉아 낮에 힘겹게 잡은 고기를 불에 구우며 그날 사냥의 성과에 대한 칭찬과 실수, 어려움 등을 이야기하고 때론 웃고, 때론 곰곰이 생각하며 불이 주는 따뜻함과 음식의 포만감으로 그날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가장의 수고로움을 느끼며 함께 하는 저녁으로 가족의 따뜻함과 안정감을 느끼며 구운 고기를 즐겼을 것이다.이렇듯 현재의 삼겹살 먹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삶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바뀌고 환경의 많은 변화가 있지만, 고된 노동을 끝내고 작은 프로판 가스불 위에 올려진 기름진 삼겹살을 뒤집으며 그날 하루의 어려운 일이나, 시덥지않은 추억들, 앞으로 걱정들을 토로하며 불의 따뜻함과 고기가 주는 포만감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특히 민중들은 1951년부터 3년 동안의 한국전쟁 후 배고픔과 절대빈곤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한 처절하게 노력했던 50-60년대, 그리고 본격 산업화의 시기로 작은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던 1970년대에는 서울과 부산 등 종로, 청계천, 남포동, 국제시장 등의 임금 노동자들인 화이트칼라나 블루칼라나 모두를 통 털어서 별로 가진 거 없이 고향을 떠나 상경하여 적은 봉급이나마 벌어서 일부는 고향집에 보내고 일부는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나머지로 하루를 살아가던 그들이 고향 친구가 왔던지, 누구의 생일이란 이유로 모여 함께 할 자리가 마련되면 고된 노동의 이야기와 그리운 고향과 부모형제 생각으로 취해갈 때 그들 앞에 놓인 작은 가스 불판 위의 비계가 더 많은 고기 조각들은 원시인류가 그랬듯 사냥의 성취물이요, 집단 연대감의 도구였을 것이다.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변화는 임금노동이었다. 산업화 이전에는 노임 즉 노동의 대가는 쌀이나 식량이었고, 이를 가지고 먹고살 수는 있지만 미래를 꿈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도시의 노동은 적은 금액이지만 다달이 월급이 있었고 이를 잘 계획하고 활용하면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는 작은 빛과 같은 희망들이 보였을 것이다. 작은 불 앞에서 오손도손 모여 추위와 배고픔을 해결하고 삼겹살의 기름짐을 독한 희석식 소주 한잔으로 헹궈내고 일어서며 “내일 보자”를 외쳤던 그 무던한 기억들의 중첩들이 이제는 또 하나의 추억들로 기억되는 여유로운 삶이 있게 되었다.

  현대 우리가 삼겹살을 먹으며 동료들과 하루의 수고로움을 이야기하고,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고, 가족과 내일을 꿈꾸었던 기억은 우리 인류가 몇 만년 동안 지속해왔던 행동들이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그 오랜 진화의 기억이 어느 순간 갑자기 우리 앞에 삼겹살과 LPG 가스로 턱 하니 나타났고 이는 고달픈 우리를 더욱 작은 불 앞 삼겹살에 빠져들게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이름을 단 삼겹살의 다양한 고기 종류로 식탁에 불을 올리고 고기를 구며 즐기는 것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그 동굴의 추운 밤의 기억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삼겹살을 즐기지 않던 외국인들이 한국을 떠나 생각나는 것 중 삼겹살이 많다는데 이는 고기부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을 앞에 두고 고기를 구우며 느꼈던 지난 인류의 추억을 그들에게 떠오르게 한 것이 그 충분한 이유라고 생각해보면 좀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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