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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어당 Feb 08. 2021

떡국

세상을 잇다. 시간을 먹다.

새해! 첫날! 첫! 음식! 떡국!

  떡국은 흰쌀로 만든 가래떡을 적당히 굳혀 타원형으로 썰어 고기 국물에 넣어 익혀 새해 첫날 처음 먹는 음식을 말한다. 계절이 따라 살아가던 농업기반의 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생활해야 했다. 이런 이유에서 생겨난 것이 때에 맞춰 살아가는 세시풍속이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농사를 준비하고 삶의 형태가 규정되었던 것이다. 때에 맞는 옷을 입고 때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여겨지지만, 이는 오랜 인류의 지적재산이다. 원시 인류에서 진화를 거쳐 자연을 활용하며 집단을 구성하여 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변화와 발전을 통해 살아남기를 꾀했던 수많은 인류들의 집합적 지식이다. 보통 문화라 부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랜 시간의 집단지성의 산물들이 현재 우리를 구성하고 있고 우리 또한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떡국을 끓이는 과정을 살펴보면, 떡은 설 전에 미리 가래떡을 뽑아서 썰어 만들어놔야 하기에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기계가 도입되기 이전 떡국 만드는 과정을 되돌아보면, 지난가을 수확한 나락의 껍질을 절구나 방아를 이용하여 등겨를 벗겨내고 이 현미를 백미로 만들기 위해 다시 속 겨를 벗겨내고 나서야 우리에게 익숙한 하얀 쌀을 얻을 수 있었고, 이 쌀을 잘 일어 돌을 골라내고 깨끗이 씻어 잘 불린 후 물기를 빼고 시루에 앉혀 고두밥을 짓고, 떡판이나 절구에 넣고 떡메로 잘 쳐서 부드럽고 찰진 떡을 만든 후 이를 국수처럼 긴 가래떡을 만들고 며칠을 적당히 굳혀 타원형 모양으로 썰어내야 비로소 일차적인 떡국 재료가 마련된 것이다.  

  국물은 보통 소고기, 닭 등을 사용하지만, 해안지방은 굴 등 해산물을 넣고 맛을 내며 각 지역별로 다르다. 예전에는 꿩고기를 사용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꿩 대신 닭”이란 말처럼 구하기 어려워 대용품을 사용한다. 간은 국간장으로 하고 고명으로는 달걀을 얇게 부쳐 가늘게 자른 지단을 흰색, 노란색으로 올리고 실고추도 약간, 대파, 김가루, 참기름과 후추로 향을 입히면 일품이다. 이 떡국을 한 술 먹으며 그 정성과 시간이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는 품들이기 힘든 떡과 고기와 향신료 등 귀한 재료를 이용하여 끓인 떡국은 별미였을 것이다. 흰쌀밥이 귀한 음식이듯 떡국은 정말 귀한 진수성찬인 것이다. 만든 어머니와 여자들의 고된 수고로움을 아는 이유이다.

 

  떡국은 국수의 한 종류라 볼 수도 있다. 쌀가루로 만든 굵은 면 가래떡은 쌀로 국수를 만든 것이 힘든 몇 가지 제약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충분한 찰기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품을 들여야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얇은 쌀면은 삶으면 면이 금방 풀려서 죽처럼 되어 자주 새로 끓여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하지만 굵은 면 모양으로 만들면 잘 퍼지지 않고 크기 또한 크니 빨리 만들 수 있고, 이를 동글 납작하게 썰면 우리가 즐기는 타원형 떡국 모양이 되는데 보관도 편하고 필요할 때 바로 조리할 수 있어 품도 덜 들며 국을 끓인 후 덜 퍼져 쫄깃한 맛을 내는데도 한결 유리하다.


  떡은 옛 부터 귀한 것이었다. 끼니도 때우기 어려운 곤궁한 삶에 흰 쌀로 만든 떡은 중요한 의례나 행사에서나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관혼상제 때 마을 사람들과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양식을 부의하고 힘을 합하여 만들어야 했다. 물론 일반 가정에서도 웃어른의 생신이나 가족의 생일날, 제삿날 등 중요한 날에 떡을 만들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여전히 귀한 것이었다.

  

  귀한 떡은 어떤 이점이 있어 만들게 되었을까? 먼저 쌀을 가루로 만들어 찌니 부드러워 소화 흡수가 빨라서 좋았고 한 번에 많은 양을 만들어 놓으면 보관도 편했고 사람들을 접대할 때 좋았을 것이다. 물론 정성껏 만든 이의 대접하는 마음도 빠지지 않으리라. 또한 행사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고마운 사람들 손에 들려 보낼 이바지로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는  빈궁한 때를  “떡이 없는 떡국”에 비유하여 말했던 것을 보면 떡은 음식 넘어서는 상징이 매우 컸다고 보인다.


  왜? 우리는 설날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일까?

  어려서 설날에 설빔을 차려입고 세뱃돈을 받아 들고 마을 양지바른 곳이나 마을 전방 앞에 모인 아이들이 서로 누가 떡국을 많이 먹었는지 이야기하며 "내가 형이다. 네가 동생이다." 옥신각신하는 풍경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떡국 한 그릇이 나이 한살이 먹는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예전 풍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일을 탕병일(湯餠日)이라 하였는데 생일에는 “떡국을 먹는 날”이란 말이다. 아이의 돌이나 어른의 생신에 장수를 기원하며 일 년에 한 번 설날에나 먹던 그 귀한 떡국을 끓여 먹었던 것이다. 이 풍습에서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먹는 것으로 여겼는데, 이를 새해 첫날에 떡국을 먹으니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으로 여겼고,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새해 첫날 떡국을 함께 먹으니 한날한시에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 것이다. 마침 옛이야기가 나왔으니 뇌물을 칭할 때 "떡값"이라는 말의 유래를 찾아보니 떡국에서 왔더라.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 이전 6조 제2조 어중 편에 보면 “문졸은 옛날의 조례라는 것이나 관솔들 중에서 가장 가르치기 힘든 자들이다.” 적고 이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였는데, 그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이 관솔들이 “설날에는 떡국 값을 요구하고, 추석에는 제수를 구걸한다”라고 말하신 걸 보면 조선시대에도 지금처럼 떡값이 많이 필요했나 보다.    


  예전의 설 명절은 매섭게 추운 겨울 한복판에서 따뜻한 떡국을 한 그릇 앞에 놓고 온 가족 모두가 모여 덕담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기원은 한해를 더욱 풍성하게 나기 위한 모두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지난해와 같은 고난은 피하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한 해가 되어 이 귀한 떡국을 내년에 다시 먹을 수 있는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이런 바람을 우암 송시열 선생은 송자대전(宋子大全1660년) 137권 구황촬요(救荒撮要)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區區蟣蝨之臣구구기슬지신 願與四方之民원여사방지민。共免今冬雪裏凍殺공면금동설리동살。而飽喫明年之大椀不托也이포끽명년지대완부탁야” 즉 “이 보잘것없는 구구한 신하는 오직, 사방 백성들과 함께 올겨울 눈보라 속에 얼어 죽지 않고 명년(明年)에 큰 사발의 떡국을 배불리 먹게 되기 만을 바랍니다.”라고 적었으니 그 매서운 추위와 배고픈 곤궁함과 삶의 어려움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옛 책 속에 떡국 이야기를 좀 더 찾아보면 연행록에 "새해에도 멀리 떨어져 있는 형제를 그리워하는 내용" 고산 유고에 "아이 생일에 떡국을 끓여 고마웠다"는 내용, 다산시문집에 "친구 집에 놀러 가 떡국을 먹고 담소"를 나눈 이야기, 해유록에 "통신사로 일본에서 떡국을 만들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이야기" 등도 있고, 사대부들이 벼슬살이하며 궁색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걱정하는 내용도 많다. 이처럼 많은 이야기 속에 떡국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음식이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걱정과 바람은 현재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따뜻한 떡국 한 그릇의 정성과 함께 나눠 먹는 공동체의 역할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제 곧 설 명절이다. 예년 같으면 가족 친지들이 모여 떡국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서로에 건강과 복을 빌며 흥겹게 맞이했겠지만, 지금의 세계적인 코비드 19 팬데믹으로 인하여 “불효자는 옵니다”와 처럼 "함께 모이지 말라"는 현수막이 나부끼는 곤궁한 시절에 되어버렸다. 현재 우리가 처한 코로나 19로 인한 어려움은 옛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던 시절보다는 배고픔이야 덜하지만, 살아남아서 내일의 안녕과 희망을 기약할 수 없는 현실은 같다. 오늘날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은 그리 나아진 것 같지 않으니 말이다.


  떡국은 곧 그 시대를 반영하고 사람의 삶을 비추어 볼 수 있다. 또한 하나 되기 위한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오래된 공동체의 음식이다. 한 그릇에 세상과 이어졌고, 한 그룻에 시간을 먹어왔다. 그리고 한 그릇에 시름과 걱정을 덜었어다. 올해도 정성껏 쑨 맛있는 떡국 한 그릇에 희망을 함께 떠놓고 온 가족과 우리 사회가 예전처럼 평안하고 안정되기를 기원하며 맛있는 한 숟갈 떴으면 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함께하여 행복한 새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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