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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Dec 17. 2022

가진 게 없다고 주저앉아있을 때 힘이 되어준 문장

이제는 덜 과민하게 살고 있습니다-7화


회사를 제대로 다니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달리 혼자 할 줄 아는 건 없고. 어떻게 먹고살아야 좋을지 막막할 때면 좋아하는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안도현 시인의 시 '새해 기도' 의 한 구절이다.


가진 것만큼으로도 충분히 신 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처음 본 후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이 문장은 유효하다. 일차적으로는 '신 나는 사람이 되자'는 메시지다. 마음이 힘들 때 이 구절을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살며시 기분이 풀린다. '그래, 그럴 필요는 없는데 내가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 것 같아.'


문장을 다시 음미해본다. 가진 것으로도 충분히 신날 수 있다라... 가지지 못한 것을 손에 거머쥐려고 하지 말고 가진 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니 그렇게 살아보라는 말이겠다. 가진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것을 가꿔보라는 건데,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보기는 했는지 스스로에게 묻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한숨인지 심호흡인지 모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가진 것... 내가 가진 것...


그러자 가벼운 깨달음이 온다. 나한테 있는 것은 어디다 던져두고 남이 가진 것만 부러워하고 있었다는 알아차림이다. 생각해보면 분명 나에게 아무것도 없지는 않다.


누군가에게는 없는데 나에게는 있는 것이 있다. 남이 가진 걸 가져보겠다고 애쓰는 것보다 내가 가진 걸 활용하는 게 결과가 좋을 확률이 높고 힘도 적게 든다. 내가 있는 길을 놔두고 굳이 힘든 길을 가려고 했구나.


가진 것 가운데 우선은 몸이다. 나에게는 움직일 수 있는 손과 발이 있고, 물건을 쥘 수 있고, 걸을 수 있으며, 밥을 먹을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고, 노래를 듣고, 말을 할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꾸준함, 섬세함, 융통성, 습득력, 행동력. 정돈하는 습관, 규칙적인 생활습관. 괜찮은 손재주, 메모를 잘하는 것 그리고 꼼꼼함.


흥미도 있다. 내가 가진 것을 탐색하기 위해 아주 사소해 보이는 흥미까지 전부 노트에 나열해본 적이 있다. 있는 것 없는 것 먼지까지 탈탈 턴다는 마음으로 모았을 때 자연, 동물, 다큐멘터리, 외국어, 그림, 글쓰기, 건강...... 등과 함께 '환경'이 나왔다.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일을 해본 적은 없었다. 혼자 관심이 이끄는 대로 뉴스를 클릭해서 보고 책을 읽거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말 그대로 '개인적인 관심사'였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 해보았다. 이 관심사로 뭘 해볼 수는 없을까?

(처음부터 아이디어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블로그에 환경문제를 소재로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고 책[전지적 지구 시점]을 출간할 기회를 얻었다)



여기 적었고 미처 적지 못한 내가 가진 많은 것들로 어떻게 하면 충분히 신날 수 있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요즘도 여전히 하는 생각이다. 옷장에 여유 공간이 없는데 새 옷이 사고 싶어지면 있는 옷을 어떻게 어울리게 잘 매칭 해서 입을지를 생각하고 거울 앞에서 비춰본다. 새 책을 주문하려다가 서점 어플을 닫고 책장에 꽂아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을 꺼내 읽는다. 소비를 줄이거나 미루면 남들이 가진 재능을 부러워하느라 방치해둔 나의 재능에 그만큼 돈을 들일 수 있다.




 '가진 것만큼으로도 충분히 신 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라는 문장은 언제고 내가 가진 것을 활용할 방도를 찾아보도록 격려한다.


벽을 바라보면서 앞이 가로막혀 있다고 주저앉아 있을 때, 방향을 바꿔서 다른 쪽을 한번 보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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