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이겨냈다고 말하는 건, 마치 태풍이 지나간 뒤에 자기가 태풍을 때려눕혔다고 믿는 것과 같다.
겨울이 왔다. 누가 용돈이라도 주면 모를까, 모든 게 귀찮아지는 엄동설한이 나는 싫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굉장히 시니컬한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겠는데, 사실 나는 상당히 밝은 존재로 살아왔다. 의도 한 건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은 날 그렇게 본다. 하지만 내가 보는 나는 ‘시니컬’도 ‘밝은’ 사람도 아니다. 그냥 대체로 ‘시큰둥’ 한 정도 같다. 근사한 일은 분명 아니다.
흔한 사춘기도 겪지 않았던 내가 우울증을 처음 겪은 건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년도 더 전의 일이다. 즐거운 대학생활은 상상일 뿐이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약 한 학기 가량을 누워만 있었다. 당시 가까운 친구 몇몇은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나를 찾아 학교 사무실에 전화를 걸기까지 했으니 나의 잠수는 사뭇 진지한 것이었다. 친구들도 영문을 모를 일이었던 당시 내 상태는 가족에게도 미궁이었다. 처음 겪는 우울감의 정체를 알기 어려웠다. 어둡고 단출한 하루의 몇 장면들만 남았고, 당시의 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행히 부모님을 그런 나를 별 다른 소리 없이 지켜만 봐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방에서 나와 병원을 가겠다고 외쳤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나서는 거의 일주일 만에 까꿍! 하면서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엄마는 그날의 모습을 아직도 놀리곤 한다(그러면서 어디에 절대 말하지는 말라고 꼭 덧붙이신다). 그렇게 나는 우울증을 ‘극복’ 한 것으로 모두에게 기억되었다. 앞으로는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그런 사건처럼 말이다. 약을 꼬박 1년가량 먹고 나서부터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학교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촐랑거리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웬걸, 우울을 동반한 무기력은 수시로 나를 급습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둠의 기운은 나를 쉽게 무너뜨렸다. 증세가 반복된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엔 차라리 영영 죽어 버리길 바랐다. 극심한 시즌 제(?), 비정기적 우울증을 겪으며 내가 깨달은 건 딱 하나다. ‘바닥은 없다’는 것. 바닥을 치면 올라갈 수 있을 거란 착각에 빠지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 이것이 극복이 가능한 문제인지 스스로 질문하는 게 어느새 소모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무기력한 생각에 빠질 것 같으면 한시바삐 그 공간이든 성가신 사람이든 모두에게서 멀리 도망갔다. 상태가 안 좋아질 것 같으면 약도 미리 챙겨 먹었다. 우울증을 ‘예비’ 혹은 ‘방지’하는 법은 이겨내는 일보다는 수월했다. 하지만 우울증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찾기 매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우울한 티가 조금이라도 나면 나의 전력을 아는 주변이들을 안심시키느라 더 피곤했다. 괜찮은 척하느라 오작동이 날 때에는 진짜 몸이 아팠다. (근육통, 몸살, 각종 염증 등) 괜찮다고 말하는 일도 에너지가 필요한 법이다.
첫 우울증 진단을 받은 2011년에 <왕좌의 게임> 시즌 1이 나왔다. 이후 2019년까지 총 8개 시즌을 챙겨보며 나는 막내딸 ‘아리아’의 서사에 빠졌다. 유복한 궁 생활을 하던 아리아는 하루아침에 아빠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가족 모두가 흩어지거나 죽임을 당한다. 그럼에도 아리아는 꿋꿋이 떠돌아다니며 복수를 꿈꾸며 폐관수련을 한다. 아리아를 움직이게 한 힘은 마법의 문장 하나였다. <왕좌의 게임>에서 다가올 전쟁을 의미하는 멘트가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인데, 아리아의 아버지는 아리아의 못 말리는 성정을 진작에 알아보고 호신을 위한 무술 선생을 붙여준다. 무술 선생은 아리아가 흔들릴 때마다 말한다. “오늘은 (죽는 날이) 아니다 – Not today.”라고. 오늘만 양보하지 말라고.
2019년이 내가 딱 서른이 되던 해였다. 드라마가 막을 내리고 나는 “오늘만 죽지 말자”를 내 삶의 모토로 삼게 되었다. 죽는 건 얼마든지 자유인데 딱 오늘만 제하는 것이다. 머나먼 수명을 생각하면 내일은 별 볼 일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언제든 내가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진심으로), 대신 딱 하루 오늘만 빼면 당장의 시간이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버킷 리스트나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어, 그러고 보니 오늘 몇 시간 안 남았는데?’ 하면서 심심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뭐 하고 놀지? 하면서 생기가 조금 도는 것이다.
겨울은 매년 찾아온다. 병을 이겨냈다고 말하는 건, 마치 태풍이 지나간 뒤에 자기가 태풍을 때려눕혔다고 믿는 것과 같다. 태풍은 그저 지나간 것이고, 나는 그 폭풍우 속에서 간신히 무너지지 않고 버텼을 뿐이다. 내가 한 일은 태풍과 싸워 이긴 것이 아니라,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내 파편들을 수습하며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일이다. 우울증과 나의 사투는 이젠 놀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겨울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 이것은 매번 새로 받아들여야 하는 무언가 일뿐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