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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선 Sep 17. 2015

청춘 # 1

  사람은 모두 섬이다.

금요일 저녁, 퇴근 후 회사 동료이자 선배인 k와 삼성동 O'호텔 바에 들렸다. 지하 bar에는 손님은 많지 않았다. 커다란 기둥 옆 테이블에 앉아 칵테일 한잔씩 주문했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비스듬한 자세로 k와 최근에 있었던 현장소장과의 일을 얘기하고 있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마른 체격에 짧은 머리의 중성적인 느낌의 여자, 나이는 서른 살 정도로 보였다. 외로워 보였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나도 살짝 웃어주었던 것 같다. 그건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 때문이었을까.

주문한 미도리 샤워를 마시고 있는데 건너편 그녀가 순식간에 내 옆자리에 다가와 앉으며

“지금 마시고 있는 거 뭔지 물어봐도  되나요? 저도 마셔보고 싶어요 ”곧바로 그녀는 내 볼에 손등을 대며

“ 얼굴이 보드랍네요  ”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불쾌감을 주진 않았지만, 분명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K는 이미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때 bar직원 2명이 곧장 우리에게 다가와 불편하시면 자리를 옮겨 드리겠다며 권하였고, 나는 그 여자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자리를 옮겼다.


 같은 대학 출신인 선배 언니의 입사지원서를 회사에서 먼저 발견하고 사장님께 추천해서 드렸었다. 일도 야무지게 하고 성격도 똑 부러지는 언니는 직장 동료이자 대학 선배 그리고 어느새 친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2년을 함께한 언니는 한 달 후면 미국으로 시집을 간다. 어쩌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일에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K를 바라보며 칵테일 한잔을 더 주문했다. 선배는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사람이 옆에 온 것은 다 진형 씨 잘못이야. 가끔 타인과의 경계를 한 순간에 없애버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오라고 손짓이라도 하는 사람 같아. 외로운 영혼들을 왜 자꾸만 옆으로 부르는 건데? 난 가끔 당신이 걱정돼."

선배 K의 진지한 표정, 그리고 진심이 담긴 얘기를 듣고 있는데, 밤 깊은 섬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 선배. 사람은 누구나 외롭잖아요?”

“ 그래. 사람은 누구나 외롭지. 나는 지금 그런 말을 하자는 게 아니야. 이 세상엔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 그렇게 무슨 말을 해도 다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 마.

때론 만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은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꼭 기억해두고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오늘은 우리 집에 가자. 내가 머리 염색해줄게. ”

“ 왜요 갑자기?”

“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싶다며. 떠나기 전에 내가 염색해주고 싶어.”

“알겠어요. 근데 선배. 나 전부터 이런 비슷한 일은 가끔씩 있었고, 그다지 거부감이 없었어.  그리고,.... “"

더 많은 얘기를  함께하고 싶었지만,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선배에게 하고 싶었지만, 선배의 단호함은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 나 많이 걱정돼요?”

“ 응. 그리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진형 씨가 진짜 원하는 사람. 자기 감정을 내버려 두지 마”

“ 알겠어요. 노력해볼게. ”


그런데, 대체 뭘 노력한다는 말인가.

나를 규정짓는 상대방의 마음도 그리고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무엇을 노력하는 말인가.

철학, 심리학 서적이라도 읽어봐야 하는 건가?

건너편에 있었던 그녀는 어느 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어쩌면 그 사람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神은 남자, 여자 그리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 3의 성을 만들었을지 모른다. 그들도 처음에는 자신이 남자거나 여자인 줄 알고 지내다가 짝 짓기의 시기가 올  때쯤 자신의 성이 제 3의 성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혼돈의 시기를 지낸 후에 결국은 그들을 자기 마음대로 규정짓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내보이지 않고 살아가다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꾸만 생각나는 그 여자의 눈빛과 표정. 

일 년에  한두 번쯤은 고등학교 동창 같은 모습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계에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 온 장소에서 처음 본 내게 다가와 볼이나 만져보면서 말을 거는 사람의 정신상태란 도대체 어떤 성질의 것일까?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은 모습을 하고 다가온 그 여자에게 호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에게 무슨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건지 궁금증이 생겨버렸을 뿐이다.

그것보다는 선배가 진짜 걱정하는 것은 무엇인 건지.

나를 자신조차 지키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고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자신의 감정이나 타인에 대해 성급하게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혐오감 비슷한 감정을 느낀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이상하다고 말을하며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나는 섬이다.

사람은 모두 섬이다.

원할 때엔 서로에게 긴 다리를 놓고 연결되어 있어도

이내 그 연결다리를 걷어버린 채

한없이 바다 위에서 혼자 부유하는 섬

외롭지 않은 순간에도 우린 모두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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