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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선 Sep 30. 2015

무제 1

그 여자는 어쩌면 남자였을까. 


이런 걸 궁금해하는 것은 지나친 관심일 테지만.

믄득, 그녀에게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우린 어쩌면 사이좋은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과 같이 나온 그녀를 만난 지 30초 만에 나는 둘이  동거해?라는 말이 튀어나올뻔했다.

이 세계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어울리지 않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도 기묘할 정도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나는 왜 저 여자의 삶에 참견하고 싶어 진 거지.

일단 관심을 끄는 방법이 가장 현명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말이다.


결국, 핸드폰이 울렸다.  난 전화를 기다렸던 걸까.

입력되지 않은 번호였지만, 그 여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예상도 했었고, 오히려 생각보다도 늦게 걸려온 전화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는 받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일까.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해 나은 선택이라는 걸.


만나기로 약속했다면, 아마 나는 전화를 끊기도 전에 바로 후회했을 것이다.

무슨 일 때문이었을까. 호기심을 억누르고 전화를 받지 않은 건 잘한 일이다. 


타인에게 은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은 이미 익숙하다. 

나였으면 절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이야기들.

사람들은 때때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쏟아 버린다.

그러한 상황들은 나에게는 부당한 대우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 때도 있었다.

모든 것은 다 내가 만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오만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타인의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오랜 시간 동안 들어주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한 노동이며 그러한 이야기들을 온전히 진심으로 받아 줄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 갈수록 알게 되었다. 

나는 그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간 쓰레기통이 아니랍니다. 감사하지만, no thanks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 질 때도 있었지만, 상처받은 사람에게 그런 말까지 퍼부을 정도의 사람 또한 아니기에 

언제가부터 좋아하는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극도로 제한하고 절제했다. 


사실 새로운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만큼 정확하게 사람이 싫어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양면성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어쨌든 갖고 싶었던 옷을 사고 나서 입어본 즉시 싫어지는 나의 변덕을 생각한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게 나에게 상당히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여자 Y는 적어도 내겐 관심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일 때문에 소개로 만난 , 진한 눈썹에 까무잡잡하고 거친 피부를 가진 그 키 작은 남자 옆에 

20센티는 더 커 보이는 그 덩치 큰 여자를 커피숍에서 처음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 

둘이 동거하는 걸까? 라니 나도 참 어이가 없었다. 이건 뭐지? 뭔가 상당히 이질적인 이 감정

첫 만남에 실례가 안된다면 정말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궁금했지만, 그건 첫 만남이든 마지막 만남이든

해서는 안될 질문이었으므로 한 시간 정도 일 얘기를 하고 서로의 명함을 주고받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여자인 나보다도 더 여자 같은 목소리와 옷차림 그리고 화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겐 왜 여장을 한 남자로 보이는 걸까. 여러 가지로 계속되는 생각에 기분이 묘하다

타인의 취향에 무관심할 정도로 관대한 내가 왜 이렇게 관심을 갖게 된 걸까. 알 수 없다. 분명히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를 만나게 된 건 그 뒤로도 전화가 서너 번쯤은 더 울린 다음이었다.


끝까지 전화는 받지 않으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나 역시 그에 대한 관심을 끈을 수 없었나 보다.

낯선 길 돌아다니는 것도 한 때 목적 없는 취미 중 하나 있으므로 그가 말한 카페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이런 동네가 있었구나. 


인적이 드문 한적한 주택가에 섬처럼 자리 잡은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조금은 신선했다.  


가끔 커피를 테이크 아웃 해가는 몇몇을 제외하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깡마르고 긴 단발머리가 보기 좋게 어울리는 카페 여자에게 아메리카노와 애플 주스를 주문한 후

자리에 앉아 우리는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잠시 동안 침묵했다. 


그 날 이후로 두 번째  만남.

그는 완벽하게 남자의 모습을 하고 나왔으므로 더 이상 나에게 혼돈은 주지 않았다.

그땐 몰랐었는데 그는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아 있었다. 


" 이상하게 당신이 궁금하긴 했어요. 왜 여장을 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여자일까 라고 생각했어요"


" 지난번엔 당신이 날 알아 본 것 같아 사실 조금은 놀랬습니다. 몰라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거든요. 

게다가 당신은 제가  전화한 것에 전혀 놀래는 기색도 없었습니다.

제가 전화할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죠. 그렇지만, 당신이 나를 알아봤기 때문에 

전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설명하기는 좀  힘들지만,... "


남자가 말을 이어가려고 했을 때 카페 여자가 아메리카노와 애플주스를 가져다 주었다.

주문하지 않은 미니 허니브레드가 보였다. 내가 카페 여자를 바라보자

" 아직 식사 전이시죠? 맛만 살짝 보시라고 조금 만들어봤어요." 

어색하게 웃고 있지만 왠지 즐거워 보이는 카페 여자에게 잘 먹겠다고 인사한 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며 살짝 미소 짓고 있는 남자를 보고 있노라니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나 역시 이 사람이 궁금했다. 왜일까. 우리가 닮아서일까.


자신과 얼굴이 닮은 사람에게 끌릴 가능성이 높다고 했던 TV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EBS 다큐였었나.

그가 나와 같은 공허한 인간은 아니길 바라며 우리는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시간은 어느새 11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고 비라도 내릴 것처럼 공기는 달라져가고 있었다. 


"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무슨 얘기를 나누었던 거죠? "


그가 미소 지으며 우리가 대화를 했다고 생각하냐고 다시 되물었다 


그는 누가 봐도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다. 

부모님께 거짓말조차 하지 않고 자랐을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 세상에 100% 효자가 존재한다면 이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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