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메일함을 연다.
언제나처럼 마음을 부드럽게 데워 주는 좋은 생각 글들이 나를 맞는다.
각박한 서울의 일상 속에서, 그 짧은 문장들은 말없이 다가와 조용히 어깨를 두드린다.
그 온기에 힘입어 나도 조심스레 글을 써 보고, 응모도 해 보고, 때로는 마음에 남은 책을 지인들에게 다시 우편으로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일상은 조금씩 따뜻해졌다.
오늘은 ‘나의 멘토’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은 대구에 계신 작은아버지다. 아버지는 9남매 중 한 분이시고, 나는 그 많은 어른들의 자상함과 온화함 속에서 자랐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분이 바로 작은아버지다. 아버지께서 들으시면 서운해하실지도 모르지만, 마음은 늘 그분을 향한다.
작은아버지를 뵐 수 있는 날은 설이나 추석, 혹은 집안의 큰일이 있을 때뿐이다. 요즘은 서울에서의 생활을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그래서 설이 지나고 먼저 전화를 주셨을 때, 반가움과 함께 죄송함이 가만히 마음을 적셨다. 나의 멘토인 작은아버지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가르치시는 분이다.
다소 엄격하신 아버지의 말씀에도 늘 귀 기울여 들으시고, 가족과 형제들의 다른 생각을 따뜻한 이해와 대화로 조율해 내신다.
무엇보다도 화목하고 성실한 삶을 몸소 보여 주신다. 작은아버지 댁은 언제나 정갈하고 단정하다. 부지런하신 작은어머니의 손길 덕분이겠지만, 그 단정함 또한 작은아버지의 삶을 닮아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떠올리며 나의 공간을 정리하고 했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정돈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 세우기 위한 작은 습관이 되었다. 사람마다 모습과 생각이 다르고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내가 배우고 싶은 모습을 조용히 따라 해 본다.
짧지 않은 해를 살아오며 느낀 것은, 사람은 적당히 감성적이고 적당히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균형이 나와 내 가족을 조금 덜 힘들게 한다. 그리고 이성적이기만 할 것 같은 작은아버지에게서 문득 감성의 결을 발견할 때면, 그 또한 긴 세월의 기쁨과 슬픔을 지나오셨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아마 누구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삶이 특별할 것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그 평범함이 가장 닮고 싶은 기준이 되었고, 삶의 방향이 되었다.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 방향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언젠가 작은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형아, 보람되게 살아라.”
낮고 따뜻한 그 음성은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잔잔히 울린다.
요즘 다시 나약해진 나를 돌아보며, 오늘도 조용히 다짐한다. 조금 더 성실하게, 조금 더 보람되게 살아가겠다고.
멀리 있어 자주 뵙지 못해도, 작은아버지!
언제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