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검열/ 프롤로그

by 온교

새벽 5시가 못 되어 깼다. 뭐하다 잠에 들었는지 불도 안 끄고 안경만 겨우 한 구석에 벗어 놓은 채다. 눈이 시큰하다. 오늘도 피곤하다 소리를 입에 달고 있게 생겼군. 달력을 뒤져보니 대충 8월 둘째 주부터 계속 이런 식이다. 아 정말이지.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짐이 있으니 일상이 덩달아 엉킨다. 빨래만 밀려도 외출할 때 스텝이 꼬이는데 오죽할까. 안 되겠다 싶어 노트북을 켰다.





글을 쓰레기통 삼아 감정을 토해내는 행동은 나쁜 거라 취급하며 지양해왔다. 나만 보는 일기장인데도 정도가 과하다 싶으면 펜을 놓았다. 같은 이유로 찢어버린 페이지도 많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웃긴 게, 글이란 게 원래 자기 표현의 수단 아닌가? 타인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내 노트를 내가 나서서 검사하지? 온라인은 공개적이지만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쓰고 있다. 이 글.




저번 주 저녁 식사 대화 도중에 친구들이 짚어준 자기 검열이란 키워드가 발단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꽤 오래전부터 발단 되어왔고 전개-위기를 거쳐 절정에 다다라 수면 위로 단어가 떠올랐을 뿐이다. 몇 달 전부터 기획이라면 너무 거창하고 프로젝트라고 하기엔 뭐가 없는. (무튼)만들고 싶은 콘텐츠가 있었다. 사용할 플랫폼 계정도 준비되어 있었고, 메모장에 적어둔 소재는 적었지만 시작하기에 부족하지 않았으며, 구성은 엉성했지만 나름대로 목차를 얽어 놓은 상태였다.




문제는 한참 글을 쓰다가도 제 발에 걸려 고꾸라지는 '나'였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영화 <트럼보>의 대사 "글로 써보면 알겠지"처럼 써보기 전엔 쓰는 사람도 모르는데, 끝까지 써보지도 않고 사사건건 트집 잡는 나 때문에 임시 저장으로 빛을 보지 못한 글들이 수두룩하다. 브런치에 11개, 네이버 블로그에 32개. 아이폰 메모에 9개.




도대체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들고 무서워서 그깟 글 하나를 마무리 못하냐-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뭐... 쓰다 보니 별로인 것 같아서..." 말꼬리를 흐리는 게 전부였다. 내가 자기 검열이 과한 사람이라는 걸 인지한지 얼마 안 되었으니 전까지 스스로도 이유를 몰랐던 셈이다. 지금도 온전히 인정은 못하고 있지만 거꾸로 올라가다 보면 결부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건 인정한다.




쓰고픈 글이 있는데 진도가 더디니 자연스레 글쓰기 책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 본가에 다녀오기 직전,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일명 팩트 폭격을 당했다.


"좋은 글이 나오려면, 타인에게 비친 나라는 '자아의 환영'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자기 검열, 사회적 검열에 걸려 넘어지면 글을 쓰기 어렵다.

(…) '슬프다' '아프다' '힘들었다' 등 동어반복적인 관념적 어휘로 뭉뚱그려서 한 바닥을 채우는 식이다. 이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감정 속으로 달아나고 감정 뒤에 숨는 것이다.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지 않고 두루뭉수리해질 때는 내적 검열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증거다.

(…) 글쓰기는 용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 p.62~63


속이 쓰렸다. 전부 해당되는 사람이 나라서. 이대론 절대 좋은 글을 못 쓴다는 게 짜증나서.




거기다 수녕이 선물해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에서 저자가 의사와 자기 검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챕터는 좀 불편했다. 본인의 문제를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려 들지도 않는 사람에게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한 글은 치부를 들킨 마냥 심란한 법이다. 왜? 나는 그렇게 못하고 있으니까.




못 본 척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정면 충돌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을 때조차도 위험하다. 상대가 '나'인데 굳이 싸움을 걸어 힘 빼기 싫었다. 비겁한 쪽이 편했다. 그러나 한 번 깨어지면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자각의 영역에선 더더욱. 거슬리고 신경 쓰인다. 없애지 않으면 남아있다. 더구나 자기 검열은 매우 날카롭고 아귀힘이 세어 붙잡은 팔뚝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쓸 수도 없고 안 쓸 수도 없는 딜레마에 놓인 한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한다.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쓰기의 말들』─ p.75


결국 노트북을 켜 여기까지 썼다. 나는 후자인 사람. 쓰지 않으면 더 괴롭다.





중구난방에 메시지도, 주제 의식도 없는 이 글. 피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은 부분과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앞으로 [자기 검열] 말머리로 게시할 예정인데, 에필로그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업로드 해도 비공개로 돌리거나 삭제하고 싶어서 수십 번 들여다보고 있겠지. 그래도 시작한 게 어디냐고 생각하련다. 오늘은 이만큼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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