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언니의 아들이 돌을 맞았다. 아이 낳았다는 소식을 엄마로부터 전해 듣고 얼굴을 본 적 없으니 이번 돌잔치가 나와 조카의 첫 대면이었다. 아이는 잔치 시작부터 끝까지 울음 한번 내지 않고 말간 눈으로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뒤뚱뒤뚱 걸어 다녔다. 언니를 닮아 같은 개월 수 아이들보다 키가 크고 형부를 닮아 웃는 얼굴이 선했다. 무엇보다 햇살을 닮아 있었다. 따뜻한 햇볕 아래 구석구석 몸을 쬐며 악한 기운을 몰아내듯 조카를 보며 나도 웃었다. 어색함을 깨기 위해,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웃는 게 아닌 자연스런 웃음은 그 자체로 치유였다.
본격적인 돌잔치 시작과 함께 10분짜리 영상을 봤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밥 먹고 목욕하고 산책하는 사진을 모은 것이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무대 앞에 설치된 스크린을 향했지만 나는 스크린을 등지고 뒤를 보는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영상 대신 영상 속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얼굴을 보았다. 나이에 비해 돌잔치에 다녀온 횟수가 많은데, 그때 항상 아이 사진을 보기 바빴지 부모의 얼굴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촌 언니와 형부는 여러 감정이 뒤얽힌 표정이었다. 아이가 무사히 한 해를 보냈다는 안도.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와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 아이를 만나기까지 마음 졸였던 시간. 그새 이렇게 컸구나 싶은 대견함. 영상 속 해사한 미소를 영원히 지켜주고 싶은 책임감. 영사기 속에 돌아가는 필름처럼 이 모든 감정이 차례차례 지나가는 언니와 형부의 얼굴을 보며 나는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누구지. 어디서 봤을까. 분명 저 얼굴을 보았는데.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신 고모 차 안에서도 내내 짚어봤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답은 집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기 위해 얼려 놓은 미역국을 꺼내는 순간 떠올랐다. 우리 엄마였다. 일주일 전 내 생일 아침. 젓가락으로 미역을 한가득 집어 먹으며 "엄청 맛있다!" 맹하게 웃어 보인 나를 보며 지은 엄마의 미소였다.
미역국을 해동하려던 손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찾았다. 잔뜩 기분이 좋았던 내가 오래 기억하고 싶어 찍어달라 한 비디오가 있었다. 전날 저녁, 없어도 된다는 나와 달리 "그래도 초는 켜야지"라며 사 온 케이크에 엄마가 초를 꽂아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불러주신 비디오. 재생하자마자 일어난 지 얼마 안 돼 퉁퉁 부은 내 얼굴이 나왔다. '예쁘게 하고 찍을걸'. 웃음이 터졌다.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고 각자 짧게 소원 비는 시간. 엄마는 내가 올해 직장에 들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길, 그리고 건강하길 바라셨다. 그건 내 바람이기도 했다. 비디오 속 나는 뭐가 그리 좋은지 감사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손뼉쳤다. 보는 나도 같이 헤헤거리다 비디오가 끝나기 전, 엄마의 한 마디에 스마트폰을 든 채로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알고 있어도 들을 때마다 울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엄마의 목소리엔 사촌 언니가 첫 생일을 맞은 아이를 바라보는 표정과 같은 결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탈 없이 한 해를 보냈다는 안도. 뭘 하는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경제적으로 보태주고 싶은 마음. 제대로 날개 펴지 못하는 딸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 남들처럼 잘하지도 못하는데 그만하고 내려오라는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던 믿음. 모르는 길을 함께해도 걱정 없는 든든함. 내 딸로 태어나준 고마움. 손뼉치며 방긋거리는 나를 보며 나지막이 말하는 목소리엔 이 모든 정서가 담겨있었다.
비디오를 끄고 키패드에 엄마 번호를 눌렀다. 당장 그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뭐 하고 있었나 물었더니 바느질 중이란다. 엄마는 요새 가방 만드는 취미가 생기셨는데, 진지한 표정으로 TV 앞에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돌잔치 잘 다녀왔어. 아기가 많이 컸더라. 조잘조잘.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매우 시시한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으며 오늘 회사에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 하소연하듯. 내일도 전화 걸어 안부를 묻겠다는 듯. 그대의 사랑처럼 언제고 언제라도 영원하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