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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 Dec 05. 2020

한글 이름

201203

나는 보모와 비슷한 일을 한다. 동남아 어떤 국가에서 어떤 가족과 살면서 아이들과 대화한다. 부모로 보이는 부부는 현지인이지만, 아이들은 한국인이다.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외식하는 날이다. 유명한 음식점에 가기로 했는데 그날은 유난히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입장권을 다 받지 못했다. 인원은 총 아홉 명, 받은 입장권은 네 장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부부의 지인 찬스로 들어가야 했다. 부부는 살짝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모처럼 다 모인 주말이라 어쩔 수 없이 사장을 불렀다.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가게로 들어섰다. 분리된 프라이빗 룸에는 큰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나는 사장과 이야기하는 부부를 뒤로하고, 아이들과 먼저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의 양쪽에는 ‘춘행’과 ‘파도’란 이름의 남자아이 둘이 앉았다. 파도는 조용한 성격이라 자리에서 가만히 그림을 그렸고, 춘행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놀다가는 어느새 자리로 와서 볼에 바람을 넣고 셀카를 찍기도 했다. 나는 그 표정을 따라 하면서 춘행이와 장난쳤고, 파도는 우리를 보며 웃었다. 두 아이는 나를 나름 잘 따랐기에 나는 아이들과 나만 아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호칭을 달리하는 거였다. 춘행이는 봄길이, 파도는 너울이로. 두 아이의 한자 이름을 한글로 바꾼 건데 그렇게만 해도 부르는 나도. 듣는 아이들도 몸이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가만히 듣던 춘행이는 봄길이란 새 호칭이 싫지는 않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아이들에게로 뛰어갔고, 파도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나도 파도 옆에서 파도가 너울이로 자랐을 때의 얼굴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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