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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면

오랜 친구

오랜 친구와 이별했다.

by onl

머릿속에 그릴 때 미소가 지어지는 존재는 많지 않다. 그것들을 떠올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날 미소 짓게 하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이 그랬고, 내 가족들도 그런 존재다. 너도 그중 하나였다.


변명하자면, 이 글을 완성하고 나서가 두려웠다. 잊고 싶어서, 잊기 위해서 쓰는 글 같다는 생각에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 변명을 곱씹으며 미루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무책임한 이별로부터 한 달이 지나 있었다. 해가 바뀌고 처음으로 긴 휴가를 받았다. 약속 없는 밝은 날 너의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휴가 동안 맑은 날이 이어졌다. 내내 그랬던 것 같다. 한 날씩 보내며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넘어 몸 전체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휴가의 마지막 날인 오늘, 글을 쓴다. 브런치에 가입하고 몇 달 동안 미루던 첫 번째 글이다.


참 오랜 친구였다. 알고 지낸 지 15년이 넘었으니. 나를 좋아했던, 그런 거라고 믿어 왔던 오랜 친구가 작년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떠났다. 먼 이별이었다. 일을 핑계로 부산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미안했다. 살아있는 동안 해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하나는 있었구나. 첫 만남 이후 10년이 지났을 때부터 틈틈이 사진을 찍어놓기 시작한 것. 예쁜 모습을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쯤부터 이별의 걱정이 손톱만큼의 크기 정도로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출장을 다녀온 뒤라 더 정신없던 때에 형에게 연락이 왔다. 뜬금없는 연락이라 기대와 걱정이 함께 딸려왔다. 형은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콧물을 닦지도 않은 친구의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아차!’ 슬프지 않았다. 무섭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상황에 미안했다. 무언가에 관한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그날 밤 꿈에 나왔던 경험이 떠올랐다. 잠들기 전까지 같은 생각과 기도를 되풀이했다. 정말로 네가 꿈에 나왔다. 잊기 싫은 꿈이었다. 소리는 없었다. 너의 행동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었던 것도 같다. 너는 나에게 달려오며 안겼다. 내 얼굴을 핥았다. 그 행동이 되려 나를 위로하는 듯 했다. “떨지 마. 나는 괜찮아. 이렇게 꿈에서라도 볼 수 있어서 좋네.” 자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때 난 아마 웃고 있었을 것 같다. 3일 뒤, 늦게까지 일하던 와중 형의 전화가 왔다. 밤처럼 조용한 대화가 오갔다. 통화를 끝내고 형이 보낸 사진 속의 넌 아주 예쁘게 자고 있었다. 항상 예쁘구나 넌.


설 연휴가 돼서야 부산에 내려갔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조용해진 마당은 퍽 잘 어울렸다. 이래서 겨울을 미워할 수 없다. 조용한 마당을 걸었다. 어릴 땐 많이 했던 행동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었는데, 그때 처음 그 생각을 했다. 넌 작은 나무상자에 담겨 있었다. 형 말로는 나를 위해 남겨 놓았단다. 나도 작별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냐 하고. 차마 상자를 열지는 못했다. 미안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명절이 끝났다. 내 기억의 설 중 가장 조용했던 설이었다.


미소를 지은 상태로 글을 써내려 왔다. 많이 웃을 수 있었고, 고마웠고, 동시에 미안했던 친구였다.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면 큰 소리로 울던,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부엌문을 긁고, 외출하고 왔다고 문을 열어달라고 문을 긁을 정도로 똑똑했던, 나를 볼 때면 항상 턱을 괴거나 발라당 눕던, 그 모습이 너무 예뻤던, 그래서 더욱 외로워 보였던, 친구였다. 나의 오랜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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