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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 Jul 01. 2019

그 사람은 왜 그럴까

190701

내가 다니는 회사의 그분은 왜 그리 화가 많을까?

여섯 가지 가설을 세워보았다.



1.     모두가 무능하다. 한심하고 화만 난다. 나는 이렇게 똑똑하고 누가 말하면 그 의도를 한번에 바로 알아채고, 깔끔한 일 처리는 물론 공과 사 구분도 철저하니까. 왜 사람들은 나 같지 않을까? 내가 시킨 일을 가지고 오면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 없다. 이런 멍청한 놈들은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다. 소리 지르고 욕하는 것만이 능사다.


2.     나는 두부 같은 사람이다. 한없이 유약하고 소심한 내 모습을 사람들이 모르면 좋겠다. 내 본모습을 보이는 순간 10년 동안 잘 쌓아 올린 내 이미지는 부스러질 게 뻔하다. 매일 큰소리치고 화내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 항상 미안하다. 사람들은 내 진심을 알까?


3.     화내는 내 모습이 너무 멋지다. 격앙됐을 때만 나오는 나의 톤, 그게 너무 좋다. 미세한 감정들이 잘 맞아떨어져서 나오는 쾌한 내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소리를 안 지르려야 안 지를 수가 없을 지경이다. “다시 해와” 이 두 마디는 상대방의 눈을 보지 않고 지겹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해야 맛이 산다.


4.     내가 혼내는 소리가 스무 발자국 거리에 있는 대표실에 닿아야 한다. 이런 나라면 모두가 잘 따를 거라고 굳게 믿을 게다. 이 회사는 나 같은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가 있어야 한다. 이 모습을 꿋꿋이 보여주면 언젠가 사장 명패를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5.     자고로 남자라면, 한 집단의 수장이라면 이래야 한다. 리더는 항상 외롭다. 내 밑에 따뜻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악당이 돼야 한다. 내 걱정은 마라. 너희들도 내 자리쯤까지 올라오면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묵묵히 따라와 줘라.


6.     사실 나는 바보다. 머리가 나빠서 몸으로라도 버텼다. 일은 못 했지만, 남 탓하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남들이 퇴근할 때도 남아서 밤새 노력하는 척했고, 상사가 주말에 나오면 얼굴이라도 꼭 비췄다. 무식하게 버틴 걸 좋게 봤을까, 운은 참 좋은 것 같다. 그래서 들키면 안 된다, 내가 한없이 부족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나를 숨기기 위해 소리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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