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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면

글쓰기의 외로움

소설 보다 (2018, 가을)

by onl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그러나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고독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날 나는 글을 쓰다가 어쩌면 내가 영원히 혼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게 문득 참을 수 없이 두려워졌다.
- 우리들, 정영수

강동호
마지막 질문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 ‘글쓰기의 외로움’에 대해 말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독자’의 필요성에 대해 환기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정은과 현수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대목처럼 읽히기도 했는데요. 그들이 ‘나’를 편집자로고 필요로 했지만 ‘독자’로서의 ‘나’를 더 원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면, 이 글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독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영수 작가에게 독자란 어떤 존재인가요?

정영수
아시다시피 글을 쓰는 것은 외로운 일입니다. ·····중략····· 저는 독자의 존재는 글을 쓰는 이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 혹은 문학이라는 도구가 언어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상대가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적어도 제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당장 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거나 존재할 예정이라는 가정이라도 필요합니다. ·····중략····· 적어도 저는 글을 쓸 때 그것을 읽을 저 이외의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고, 언제나 그 존재를 의식합니다. 저는 외롭지 않은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역설적으로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외로움이 해소될 수 있다는, 독자라는 ‘가능성(혹은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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