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9일

그 삶의 의지를 기억하며, 바우

by 버티기


운명처럼 바우를 만난 건 어느 동물병원이었다. 진료비 문제로 강아지 한 마리가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간 그곳에는, ‘강아지’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기골이 장대한 시츄 한 마리가 있었다. 생후 1년 6개월이 된 성견이었지만,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꼬리를 흔드는 녀석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집으로 데려왔다.


집에 온 바우는 가족이 생겼다는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집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먼저 다가가 친근하게 반겼다. 하지만 둘째 아이에게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다. 다시 동물병원으로 데려다 주려 하자,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나를 막아섰다. 그렇게 우리 집에는 식구가 하나 늘었다.


특히 바우와 둘째 아이는 솔메이트였다. 둘이 나란히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눴고, 소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한 입씩 나눠 먹었다. 그 사랑의 증거로 바우의 몸무게는 어느새 12kg까지 불어났다. 사람들은 “돼지냐, 개냐”며 웃어댔지만, 바우는 누군가 슬퍼하면 어김없이 곁으로 와 눈물을 핥아주던, 속 깊은 위로자였다.


하지만 바우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을 빠르게 따라잡았다.


집에 돌아오면 현관에 나와 빙글빙글 돌며 반기던 바우는 열세 살이 되자 마중 나오는 날이 드물어졌다. 열다섯 살쯤 되었을 때는 내가 이름을 부르며 찾아야 했다. 그러면 어딘가에서 자다 말고 고개를 들며, “왜 깨워요”라는 듯, 눈과 꼬리로만 인사를 했다.


열일곱이 되던 해, 바우는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여기저기 부딪혔다. 어느 날 주방으로 달려오다 얼굴이 바닥에 ‘쿵’ 하고 닿으며 크게 고꾸라졌다. 다음 날에는 사람으로 치면 중풍처럼 한쪽 몸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그다음 날에는 머리 외에는 움직일 수 없었다. 네 다리는 힘없이 축 늘어졌다.


평생 짖지 않던 바우가 처음으로 울부짖던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해 오물에 젖은 채 터져 나오던 그 처절한 소리는, 도움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게 된 노년의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그때부터 나의 ‘개수발’이 시작되었다. 욕창이 생길까 밤낮으로 몸을 뒤집어 주었고, 평생 사료만 먹어온 녀석을 위해 닭고기를 삶았다. 비싼 딸기와 치즈도 아끼지 않았다. 누군가는 안락사를 권했지만, 건네는 음식을 여전히 맛있게 받아먹는 그 삶의 의지를 나는 꺾을 수 없었다.


바우의 마지막을 지키며 많은 생각을 했다. 개의 일생은 마치 사람의 일생을 다섯 배속으로 압축해 놓은 것 같았다.


영원할 것만 같은 젊음은 생각보다 빨리 끝나고, 조금씩 늙어가며 병들다가 결국은 제 몸조차 추스르지 못하게 된다. 몸은 말라가고 골격은 뒤틀린다.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간다. 그렇게 생의 모퉁이를 붙잡고 있다가,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2019년 2월 19일, 열여덟 살이 되던 해 바우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모두 보여주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너무 슬프면 오히려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울음이 터질까 봐 사람들에게 바우의 부재를 알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열일곱 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어떤 존재가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바우는 많은 사랑을 주고 떠났다.


무엇보다 바우는, 힘겨웠을 삶을 끝까지 살아내며 말없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사람의 인생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