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달랐을까.

by 버티기




신년회 자리, 쉰의 아빠와 마흔다섯의 엄마가 앉아 있다. 난임 끝에 귀하게 얻은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2학년. 부모의 일상은 아이의 내일을 위해 저당 잡혀 있는 듯 보였다. 지난번엔 교육을 위해 서울행을 고민하더니, 이번엔 초등학교 근처에 아파트를 샀단다. 중학교부턴 기필코 강남으로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열정이었다.


문득 내가 자녀 교육에 진심이었던 시절이 떠올라 아이에게 물었다.

"학원 뭐 뭐 배워?"


글쓰기, 영어, 수학, 과학, 피아노, 바이올린, 수영, 태권도….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이름들이 아이의 입에서 쏟아진다. 아이는 식탁에 앉자마자 아빠 배낭에서 책을 꺼내 읽고, 엄마는 그런 아이의 입에 밥을 떠 넣어 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슴 한구석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아련함이 천천히 올라왔다.


아이도, 그 부부도 가여웠다.

그리고 한 때의 나 역시.


잠시 후, 책을 덮은 아이의 얼굴에 더없이 불편한 기색이 스친다. 어른들의 대화 틈에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는 표정이다. 아이는 게임이 하고 싶었겠지만,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라도 미디어 노출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을 것이다.


엄마라고 왜 모르겠는가. 그 선 밖에는 아이만의 '사회생활'이 있고, 또래의 대화에 끼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매개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모는 자꾸만 자신이 그어놓은 깨끗한 선 안으로 아이를 불러들인다. 그것이 아이를 지키는 최선이라 믿으며.





주변을 돌아보면 다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나만 유독 예민하게 굴며 지나온 선택들을 뒤늦게 되짚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여전히 정답은 알지 못한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여전히 아이를 통제했을까.

놓으면 곧장 방임이 되어버릴 것 같았고,

붙잡고 있자니 사랑이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았다.


저 부부가 내 글을 읽는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함정은 반드시 직접 지나가야만 하니까. 그 함정 속에서 허우적대고 버둥거리다 겨우 빠져나와 본 사람만이, 비로소 자기 손에 쥔 것이 사랑이었는지, 불안이었는지를 다시 가늠해 보게 될 테니까.


훗날 그들이 그 뜨거웠던 함정을 지나온 뒤, 문득 아이의 뒷모습이 낯설어지는 어느 날이 온다면, 이 고백들이 그들에게 조금은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