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선택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

by 버티기




몇 해 전 아버지가 입원하셨다. 폐를 감싸는 흉막에 물이 차 흉수를 빼내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가족들은 며칠만 입원하면 곧 퇴원하실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줄곧 무거웠다.


나는 오래전부터 연로한 노인에게 가해지는 침습적인 의료 행위가 과연 최선인지 의문을 품어왔다. 과거 할머니의 수술을 반대했던 아버지처럼 맹목적인 거부감은 아니었다. 다만 특별한 증상이 없다면, 몸이 이미 그 상태에 적응하며 나름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우려했던 것처럼 입원 후에도 흉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병원 생활은 어느덧 한 달을 향해 가고 있었다. 흉수의 원인이 호흡기 문제로 단정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다른 과에서 책임지고 판단하기에도 애매한 상태였다. 담당 교수 역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간병을 위해 짐을 싸 들고 병원에 도착한 날, 아버지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다행히 오전이 되자 정신이 조금 맑아지셨다. 나는 귀가 어두운 아버지의 귓바퀴에 손을 모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여쭤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미뤄두고 있던 질문이었다.


“아버지, 만약 너무 힘들어서 죽을 지경이 되면, 기계로 숨 쉬게 해서라도 살려달라고 할까요?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나는 이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었다. 의미 없는 연명 치료보다는 존엄한 마무리가 옳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아버지 또한 비슷한 대답을 하실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글쎄, 나는 지금껏 내가 죽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당최 그런 생각을 안 해봤네. 그냥 병원에서 하자는 대로 해야지.”


아흔세 해를 살아오며 죽음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니. 그 짧은 대답 속에서 나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고 싶어 한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강렬한 생의 의지를 읽었다.


그 순간 나는 내 기준의 ‘옳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버지가 이 세상을 조금 더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가장 귀한 역할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회진을 온 교수에게 명절 무렵 나타났던 증상과, 심장내과에서 처방이 바뀐 뒤 눈에 띄게 회복되었던 상태를 차분히 설명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제는 퇴원을 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호흡기내과 교수는 잠시 침묵하더니 결단을 내렸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흉수가 줄지 않았더라도 흉관을 빼고 퇴원합시다. 병원보다는 외래로 자주 오시는 게 어르신께 더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노인에게 병원은 때로 가장 위험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거짓말처럼 기력을 되찾으셨다. 흉수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요즘도 친정에 가면 아버지는 자주 창밖을 바라보고 계신다. 지나가는 사람들, 흔들리는 나뭇잎, 살아 움직이는 세상의 풍경들. 별말씀은 없으시지만, 아버지는 지금 이 세상을 온 힘을 다해 눈에 담고 계신다.


내가 생각했던 ‘존엄한 마무리’는 어쩌면 세상을 덜 살아본 자의 오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당신만의 방식으로, 끝까지 삶을 사랑하며 이 찬란한 세상에 머무르고 계신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안도한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이 세상에 조금 더 머물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