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 비밀입니다.
날이 너무 좋아 집에만 있으면 햇살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은 일요일 아침. 우리 부부는 식탁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오늘의 목적지'를 검색했다. 하지만 검색창의 현란한 맛집과 카페 리스트가 무색하게도, 내 마음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있었다.
"여보, 그냥 남쪽으로 가고 싶어. 이유? 없어. 그냥 남쪽이야."
마침 집 앞에 새로 생긴 하이패스 나들목이 마치 "어서 남쪽으로 가라"며 손짓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중부고속도로에 몸을 싣고 한참 수다를 떨던 중, 남편이 갑자기 뇌리에 스친 듯 외쳤다.
"아! 지난번에 논산 갔을 때 못 보고 온 '관촉사' 가자!"
내비게이션에 목적지가 찍혔다. 중년 부부의 여행이란 모름지기 수다와 길 찾기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얘기가 너무 깊어지면 고속도로 출구를 지나치기 일쑤라, 갈림길이 나올 때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닫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도착한 관촉사 입구, 우리 앞엔 두 갈래 길이 놓였다.
1번 코스: 완만하지만 지루하게 긴 언덕길.
2번 코스: 짧지만 허벅지가 타들어 갈 것 같은 가파른 계단.
우리는 내일의 근육통보다 오늘의 효율을 택했다. "짧고 굵게 가자!" 낑낑대며 계단을 오르니, 보상처럼 논산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그 오른편, 드디어 그분이 계셨다.
머리발(?) 좀 세우신 은진미륵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은진미륵'. 실제로 보니 비율이 정말 파격적이다. 얼굴이 몸의 절반이다. 요즘 유행하는 8등신 비율은 가볍게 무시하신 이 미륵님은, 심지어 아주 위엄 있는 '돌 모자'까지 쓰고 계셨다.
그 압도적인 비주얼 앞에 서니 종교가 없어도 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 주변을 보니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미륵님 앞에 서서 요지부동이다.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은 소망들이 얼마나 무거운지, 기도가 끝날 줄을 모른다.
명당의 정기, 그리고 문제의 '소원석'
유튜브에서 본 자현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진짜 명당은 절 뒤쪽 한 평 반 남짓한 칠성각이나 삼신각이다!" 기왕 온 거 명당 정기는 다 흡수하고 가야지 싶어 다시 허벅지를 근육을 달래며 삼신각으로 향했다.
거기서 기묘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 가족이 동그란 돌을 들며 "이제 소원 이루어지는 거네!"라며 환호하는 게 아닌가. 그들이 떠난 뒤, 나는 슬그머니 돌 앞으로 다가갔다.
'자, 이제 내 소원을 빌 차례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돌을 들었다. "으어억...!" 소리가 절로 났다. 세상에, 소원이 이렇게 무거운 거였나? 거의 '데드리프트'급 무게였지만, 소원 성취를 위해 기어코 돌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내 뒤를 이은 남편이 가관이었다. 그는 충분히 들 수 있는 체격이면서도, 돌 앞에서 온갖 안면 근육을 동원해 낑낑거리는 척만 하더니 돌을 바닥에 그대로 둔 채 일어났다.
"아~ 무거워서 안 들리네? 소원 이루어졌다!"
나는 황당해서 물었다.
"아니, 돌을 들어야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 아냐?"
"아닌데? 돌이 안 들려야 부처님이 소원을 꽉 잡고 안 놔주시는 거래."
누구 말이 맞는지 알 길은 없다. 누군가는 들어서 소원을 이루고, 누군가는 안 들어서 소원을 이룬다니. 결국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 소원 성취의 비결인가 싶었다.
무거운 돌을 들고 허리가 삐끗할 뻔한 나나, 안 들리는 척 연기하며 안도한 남편이나. 그 명당의 정기 아래서 낄낄대며 내려오는 길, 이미 우리의 소원은 '함께 웃는 오늘'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오늘의 여행 팁: 관촉사에 가시면 돌을 들어보세요. 들리면 '내 힘으로 이루는 소원', 안 들리면 부처님이 찜한 소원'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