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비장한 질문

유리 주사기

by 버티기





타국에서 몸이 아픈 것만큼 난감한 일이 또 있을까. 우리나라는 말도 잘 통하고 의료비 부담도 적지만, 낯선 땅에서 조금이라도 아프면 그 자체로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나의 첫 영어 선생님이었던 마가렛도 그런 적이 있다. 이비인후과를 방문했지만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아 진료를 포기하기를 몇 차례.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조심스레 병원에 동행해 통역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 내 영어 실력은 통역을 자처할 만큼 유창하지 않았지만, 마가렛 눈에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유일한 한국인 친구였던 모양이다.


우리가 찾은 작은 이비인후과에는 인자한 인상의 오십 대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파란 눈에 갈색 머리를 가진 외국인 환자의 등장에 선생님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이내 친절하게 최선을 다해 소통하려 애쓰셨다. 언어가 막히면 몸짓을 섞어가며 설명하셨고, 나 역시 부족한 실력이나마 중간에서 간간이 힘을 보태며 무사히 진료를 이어갔다.


문제는 주사를 맞아야 하는 순간에 터졌다. 마가렛은 주사를 맞기 직전, 나를 통해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며 비장하게 입을 뗐다. 사실 그녀가 나를 굳이 병원까지 데려온 진짜 이유는 바로 이 질문 때문이었다.


Do they use glass syringes?
(유리 주사기를 사용하나요?)


유리 주사기라니! 우리나라는 이미 일회용 주사기가 도입된 지 오래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주 어릴 적 동네 의원에서나 본 적이 있는 듯한 유물 같은 존재였다. 나는 당연히 일회용 주사기를 쓴다고 설명했지만, 마가렛의 불안함을 완전히 잠재우기 위해 그녀가 보는 앞에서 의사 선생님께 다시 물었다.


선생님은 손사래까지 치며 당연히 일회용 주사기를 사용한다고 강조하셨고, 새 주사기를 꺼내 확인시켜 주고서야 마가렛은 안심하고 주사를 맞았다.


1990년대 후반, 마가렛의 눈에 비친 한국은 유리 주사기를 소독해서 다시 쓰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 만큼 생소하고 낯선 나라였나 보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서로의 '상식'이 달랐던 그날의 진료실 풍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서툰 영어였지만 그날만큼은 이방인 마가렛의 불안을 통역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