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돌개처럼 발음하라는 말

입술 모양으로 달라진 언어의 온도

by 버티기





누군가의 말을 듣다 보면, 뜻이 아니라 소리 때문에 유난히 귀에 남는 단어를 만나기도 한다.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에 매여 영어학원에 가기 어려웠던 시절, 교포 출신 이웃과 영어로 수다를 떨며 언어에 대한 갈증을 달래곤 했다. 그녀는 유독 ‘basic’이라는 단어의 내 발음을 불편해했다.


나는 학교에서 배웠던 습관대로 ‘베이직'이라고 발음했고,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의 얼굴에는 잠깐의 망설임이 스쳤다. ‘s’ 소리를 좀 더 맑게 살려야 한다며 몇 번이고 내 발음을 바로잡던 그녀의 눈매가 아직도 선하다.


원어민과의 수업에서 내게는 꼭 붙들고 있어야 할 문장들이 있었다. 상대의 말이 너무 빨라 숨이 가쁠 때면, 나는 어김없이 그 문장들에 꺼내 들었다.


“Would you speak a little slower?”


“Sorry, I didn’t catch that. Would you say that again?”


내 서툰 발음도 찰떡같이 알아듣던 마가렛이었지만, 문장마다 반복되는 나의 ‘would’ 발음만큼은 그녀의 귀에 자꾸 걸렸던 모양이다.


어느 날, 마가렛은 ‘wood’와 ‘would’의 발음 원리가 이미 내 모국어 속에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낼 수 있는 소리라며, 그녀가 내민 연습 단어는 뜻밖에도 제주 서귀포 앞바다의 ‘외돌개’였다.


‘외’라는 소리는 ‘왜’와 다르다. 입술을 바짝 오므리며 시작하지만, 다음 소리와 이어지는 순간 웅크렸던 입술은 꽃이 피듯 살그머니 펼쳐진다. 마가렛은 바로 그 ‘외돌개’를 말할 때의 첫 입모양처럼 ‘would’를 발음해 보라고 했다.


그렇게 소리를 내보니, 내가 알고 있던 ‘우드’는 실제 발음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오히려 입술을 단단히 오므렸다가 짧은 찰나에 튕기듯 빠져나오는 소리, ‘우워드’에 가까웠다.


W의 발음을 아주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 내 입에서 나가는 언어의 온도가 달라졌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마가렛이 두 언어 사이의 미세한 유사성을 짚어낼 수 있었던 것은, 타인의 소리에 온 마음을 다해 귀 기울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살아 있는 소리를 듣고 따라 하기보다 오래도록 익숙한 틀과 기억에 기대어 언어를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미 입력된 방식대로 말해 왔다는 것을.


그 이후로 나는 아무리 쉬운 단어라도, 원어민이 입 속 어디에서 어떤 감각으로 소리를 만들어 내는지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완벽해질 수는 없겠지만, 낯선 단어 앞에서 마가렛이 그랬던 것처럼 서두르지 않고 온 마음으로 들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