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느와 엔, 알과 어ㄹ

소리의 간극, 세대의 간극

by 버티기





오래전 처음 영어 회화를 시작했을 때, 나를 가장 애먹였던 복병은 의외로 He와 She를 구분하는 일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겹도록 외워 온 기초 중의 기초건만,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하면 어째서인지 자꾸 거꾸로 튀어나왔다. 우리말에서는 그저 “그 사람” 한마디면 충분했기에, 매 순간 성별을 명확히 갈라 지칭해야 하는 영어의 규칙은 혀끝에서 번번이 헛돌았다.


인칭에 따른 동사 변형이나 시제 활용 역시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살아 있는 문장이 되어 나오기까지는, 쑥스러움에 얼굴을 붉혀야 했던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다행히 그 ‘미인 회화’ 학원에서는 나의 모든 실수가 용납되었고, 심지어 마가렛은 내 마음속에서 합리화 기제까지 작동시켜 주었다.


English is not your native language,
so it’s natural that you’re not good at it.

(내 귀에 들린 언어 : 영어는 너의 모국어가 아니잖아, 네가 잘 못하는게 자연스러운 거야.)


‘맞아. 우리말도 아닌데 못해도 괜찮아. 그냥 이것저것 많이 말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학원 밖에서도 일상의 문장들을 영어로 궁리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내가 만든 표현이 맞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학원으로 향하던 그 시절, 마가렛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던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가끔은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도합 10년을 넘게 영어를 배웠지만 우리는 정작 ‘입을 떼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시험지 위에서 정답을 골라내는 기술에만 몰두하느라, 눈앞의 상대와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감각은 끝내 길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학창 시절 외국인 손님이 학교를 방문하는 날이면, 그들을 맞이하는 역할은 영어 선생님이 아니라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학생의 몫이었다. 문법과 독해에는 능통했지만, ‘살아 있는 소리’ 앞에서는 입술을 떼지 못했던 모습이 우리 세대의 보편적인 풍경이었다.


그 시절, 나보다 윗세 대였던 스승님들은 오죽하셨을까. 수학 시간, 선생님은 칠판에 n+1을 쓰며 “에느 쁠라스 일”이라고 읽으셨다. 우리는 뒤에서 킥킥거리며 “선생님, '엔 플러스 일'이요” 하고 발음을 바로잡곤 했다.


그런데 긴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내가 학생들을 마주하는 자리에 서고 보니, 이제는 내가 아이들의 발음 앞에서 묘한 격차를 느낀다. 나는 유전 물질인 RNA를 익숙하게 ‘알앤에이’라고 발음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혀를 멋지게 굴려 ‘어ㄹ엔에이’라고 말한다.


옛 수학 선생님의 투박한 발음을 들으며 내가 느꼈던 그 생경함을, 이제는 내 학생들이 나를 보며 느끼고 있겠구나 싶어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교과 과정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졌으니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이 미묘한 발음의 차이야말로 우리가 건너온 언어의 세대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증거인 것 같다.


옛 열정을 떠올리며 새삼 깨닫게 된다.

언어란 살아 있어서 역동하고,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언어마저도 세대의 시간을 따라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