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바뀐 자리(1)

천사와 악마 사이, 엄마의 푸념

by 버티기





새벽 배송 같은 건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장바구니가 터지도록 먹거리를 가득 들고 엄마와 큰언니가 대문을 들어서면, 전쟁 같은 명절 준비가 시작되었다. 고기를 저미고 칼집을 내는 분주한 손길 사이로 엄마는 네명의 딸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배정했다. 막내였던 내게도 임무는 있었다. 동그랑땡 반죽을 빚거나, 동태포에 밀가루 옷을 예쁘게 입혀 달걀물에 퐁당 빠뜨리는 일이었다. 집안 가득 고소한 기름 냄새가 공기를 채웠고, 엄마 눈을 피해 몰래 집어 먹던 뜨거운 전 한 점은 내게 각인된 '명절의 맛' 그 자체였다.


명절이나 제삿날이면 아버지의 형제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고모들과 작은아버지 내외, 그 자녀들까지. 그 좁은 집에 어떻게 다 모였을까 싶을 만큼 북적였지만, 누구 하나 미리 와서 일손을 돕는 법은 없었다. 고기 한 근이나 달걀 한 판이라도 사 들고 오면 그나마 양반이었다.


제사가 끝나면 엄마는 정성껏 만든 음식을 아낌없이 내놓았고, 돌아가는 이들의 손에 허전하지 않도록 떡과 전을 한 꾸러미씩 싸 주었다. 젊고 활기찼던, 그리고 끝까지 도리를 다하려 애쓰던 엄마의 모습은 이제 아련한 풍경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애쓰며 종부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온 엄마에게도, 할머니를 수발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엄마의 나이가 일흔을 넘기자 풍채 좋은 할머니를 억지로 일으켜 앉히고, 밥을 먹이고, 다시 눕히는 일은 고된 노동이 되었다. 그 끝에 엄마는 깊은 한숨을 섞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에휴, 이 노인보다 내가 먼저 죽겠다.”


엄마에게 시어머니는 어떤 존재였을까.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장면이 있다. 아버지가 엄마를 위해 알록달록한 원피스를 사 오신 날이었다. 옷을 보자마자 할머니는 “그 옷 참 예쁘다”라고 말했다. 어린 내 귀에는 단순한 칭찬처럼 들렸지만, 엄마의 얼굴은 싸늘하게 식었고 망설임 없이 차갑고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냥 어머니 입으세요.”


할머니 몸에는 들어가지도 않을 작은 옷이었지만, 엄마는 끝내 한 번도 걸쳐보지 않았다.


엄마에게 할머니는 단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편의 어머니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부 사이의 다정한 틈마다 끼어 있던 존재, 젊은 날의 설렘을 앗아가고 늙어서는 자신의 생명력마저 갉아먹는다고 느껴졌던 커다란 벽이었을 것이다.


고단한 간병의 시간 속에서 엄마는 가끔 벼랑 끝에 선 마음을 내비쳤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내 마음속에 천사와 악마가 왔다 갔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