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바뀐 자리(2)

같은 자리를 걷는 사람

by 버티기




명절이 다가오면 남편과 함께 마트로 향한다. 질 좋아 보이는 LA갈비를 골라 담고, 시어른이 좋아하실 만한 식재료를 살피며 이번엔 어떤 요리로 어른들을 기쁘게 해 드릴까 즐거운 고민에 빠지곤 했다. 장바구니 가득 재료를 들고 돌아와 두 아들과 남편을 진두지휘하며 폭풍처럼 음식을 장만하고 나면, 비로소 부모님을 찾아뵐 준비가 끝난다.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역귀성이라 서두르기만 하면 정체를 피할 수 있다. 이른 아침 단장을 마치고 두 손 무겁게 정성을 들고 서울로 향했다. 시댁에서 점심을 먹고 뒤정리까지 마친 뒤 오후 서너 시쯤 출발하면 친정에는 다섯 시쯤 도착한다. 지방에 사는 동생 얼굴 한번 보겠다고 언니들도 그 시간에 맞춰 친정으로 모여들었다. 우리 6남매와 배우자, 그 자녀들까지.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을까 의아할 만큼 집안은 북적였다. 저녁이 되면 새언니가 준비한 명절 음식과 언니의 트레이드마크인 갈비찜 냄새가 온 집안을 채웠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익숙한 친정의 향기였다.


어느덧 나의 부모님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고령이 되어, 이제는 창가 지정석 같은 소파에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계신다. 식사 때가 되면 오빠는 꼭 엄마 옆자리에 앉아 눈이 침침한 엄마의 숟가락 위에 반찬을 일일이 놓아준다. 척추관이 좁아져 걷기 힘든 아버지가 외출할 때면 오빠와 조카들은 기꺼이 지팡이가 되어준다. 그리고 그 곁에는 부모님의 식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새언니가 있다. 정작 자기 부모님의 식성은 잘 모르면서도, 시부모님을 위해 끼니마다 정갈한 상을 차려내는 언니다.


요즘 주변에서 보면 부모님 정도의 건강 상태일 때 요양원을 찾는 경우가 많지만, 오빠는 치매 기운이 있는 부모님을 절대 남의 손에 맡기려 하지 않는다. 가끔 민방위 훈련처럼 부모님의 위급한 상황이 닥쳐오면 오빠가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우리 남매들은 모두 협동하여 번갈아 부모님을 간병한다.


오빠야 피 섞인 아들이라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새언니는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새언니의 모습에서 젊었던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것은 지독하리만큼 닮아 있는 평행이론이었다.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언니의 몸은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다.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지만 시부모를 모시며 언니의 마음속에도 하루에 열두 번씩 천사와 악마가 들락거렸을 것이다. 지친 언니의 뒷모습을 볼 때면, 과거 엄마가 했던 그 말이 메아리처럼 겹쳐 들리는 것 같다.


“이러다 내가 저 노인보다 먼저 죽는 건 아닌가.”


세월은 흐르고 사람은 바뀌었지만, 그 자리에 남은 고단함의 이름은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머물러 있다.









***도리라고 여기며 애쓰고 살아온 우리 가족의 삶 앞에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