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그리워하며
오빠의 진두지휘 아래 설날의 하이라이트인 세배가 시작됐다.
증조부모가 된 나의 부모님께 육 남매 내외와 그 자손들이 일제히 절을 올린다. 예전에는 세배가 끝나면 자연스레 용돈을 받는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우리의 마음을 담은 두툼한 돈 봉투를 부모님께 건넨다. 부모님은 그 봉투를 받아, 손주와 증손주들을 위해 미리 준비한 작은 봉투로 나누어 주신다.
순서가 끝나면 큰 언니네부터 다시 세배 행렬이 이어진다. 어느덧 성인이 된 다음 세대가 삼촌과 이모의 자격으로 또 그다음 세대의 절을 받는다.
꼬마 아이들은 제 머리통보다 커다란 복주머니를 들고 다람쥐처럼 안방을 드나든다. 돈의 가치를 알 리 없지만, 복주머니에 봉투가 하나둘 쌓일 때마다 번지는 설렘은 명절의 흥취를 한껏 돋운다.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오빠 내외는 수많은 사람들을 기나긴 시간 동안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맞이한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시부모’라는 타이틀을 얻은 오빠 내외의 며느리들은 이제 부엌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대신 아들과 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고모인 우리 자매와 남동생 내외가 일손을 보탠다.
명절뿐만이 아니다. 김장을 할 때도,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도 뼈 빠지게 움직이는 것은 늘 ‘낀 세대’였다. 문득 예전 기억이 스친다. 명절이면 구름처럼 몰려오던 아버지의 형제들과 그 자녀들. 세대를 거듭하며 반복되는 고됨은 더 커져, 위로는 고령의 부모를 부양하고 아래로는 자녀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우리 세대의 숙명적인 굴레처럼 느껴졌다.
나의 부모 세대는 모든 것을 희생해 자식을 키웠다. 그 자녀들은 ‘도리’라는 이름으로 그 부채를 갚았다. 그러나 우리 낀 세대는 다르다. 자녀라는 미래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나, 정작 우리가 치른 희생의 영수증은 길을 잃었다.
늙어가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머지않은 나의 미래를 엿보기도 한다. 그들이 누렸던 마지막 ‘부양의 온기’를 부러워하면서도, 내가 짊어진 ‘부양의 무게’를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 것이 옳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결국 삶의 끝자락에는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참으로 따스하다.
힘들 때 숨어들 수 있는 안식처지만, 동시에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묵직한 삶의 굴레이기도 하다.
어느 해부터 나는 이 고리에서 한 발 비켜서기로 했다.
명절 당일에는 시댁에도 친정에도 가지 않는다. 명절 전에 미리 부모님을 찾아뵙고 마음을 전한 뒤, 당일에는 남들보다 몇 배의 비용을 치르면서도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사실 나는 그 북적거리던 설날을 누구보다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거실 가득 풍기던 새언니의 갈비찜 냄새,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온기를 뒤로 하고 공항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늘 헛헛하다.
그럼에도 내가 비행기를 타는 것은 부모에 대한 거부도, 가족에 대한 외면도, 나만의 해방도 아니다.
가족의 따스함을 서로가 존중하며 '도리'라는 이름의 무게 속에도 그 사랑이 이어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나는 다음 세대에게 '부양의 의무' 대신 '각자의 삶'을 남기기로 했다. 이 것은 낀 세대로서 내가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던, 가장 사랑하기에 선택한 서글픈 결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