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윗집에서 콩콩콩 뛰어다니는 소리가 한밤중이고 새벽이고 우리 집을 울린다. 캐나다에 사는 딸네 가족이 설을 쇠러 친정 나들이를 온 모양이다. 타국에 살다 온 그 집 딸은 한참씩 친정에 머물곤 하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여지없이 활기찬 발걸음을 남긴다.
‘콩콩콩, 꽁쿠르 꽁꽁 쾅쾅’
하지만 나는 그 소리가 전혀 싫지 않다. 소음 너머로 아이들이 웃으며 행복해할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명절 음식 만드는 전 냄새가 번져오는 저녁, 우리 부부는 조용히 여행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때 적막하던 집안에 ‘딩동’ 하고 벨 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싶어 문을 열어보니, 윗집 딸이 아이 하나는 안고 다른 하나는 손을 잡은 채 서 있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층간소음이 이웃 간에 어떤 갈등을 빚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이였다.
그녀는 아이들이 밤낮 가리지 않고 뛰어다녀 정말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곁에 선 꼬마 숙녀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을 불쑥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집안이 어수선해 차 한 잔 대접하지 못하고 문간에서 인사를 나눴지만, 미안해하는 그 진심만큼은 온전히 전해져 왔다.
“괜찮아요. 아이들 뛰는 소리도 귀여운걸요. 마음 쓰지 마시고 재미있게 놀게 두세요.”
손사래를 치며 웃어 보였지만, 젊은 엄마는 여전히 송구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나에게 그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다정하고 화목한 가족의 리듬이었다.
문득 나의 손녀를 떠올려 본다. 내 손녀도 이제 저 아이들만 할 텐데. 부쩍 자랐을 그 아이가 내 집에 놀러 와 아랫집 눈치 보일 정도로 마음껏 뛰어놀 날이 내게도 올까.
“할머니!” 부르며 달려올 발소리를 상상해 보지만, 닿을 수 없는 마음의 거리만큼이나 그 울림은 아득하기만 하다. 아쉬움에 손을 뻗는 것도, 서운함을 내색하는 것도 모두 구차해서 나는 명절마다 비행기 표를 끊는다.
적막한 거실을 채우는 ‘콩콩’ 소리는 생생한 삶의 활기이자, 어느 아이의 소중한 유년이 ‘외갓집’이라는 따뜻한 추억으로 새겨지는 소리다.
무엇보다 타인에게 폐를 끼칠까 전전긍긍하며 미안함을 건넬 줄 아는 그 젊은 엄마의 마음씨가 참으로 귀하고 고맙다. 내 자식에게도 받지 못했던 위로를 따뜻한 이웃의 발소리에서 얻는다.
뜻밖의 방문으로 짐을 싸던 리듬이 잠시 깨져 다시 체크리스트를 훑어야 했지만, 입가에는 내내 미소가 머문다. 비록 내 손녀는 아니어도 “여행 잘 다녀오세요”라는 따뜻한 배웅을 받은 기분이다. 전해받은 귀한 마음을 가방 한편에 갈무리하며, 나는 다시 활기차게 짐을 꾸린다.
이번 명절, 나의 목적지는 서운함이 없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