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진에 날개를 달다
청사진을 처음 본 것은 아버지가 집을 짓기 시작하셨을 때였다.
그것은 단순한 설계도면이 아니었다. 푸른 종이 위에는 가장으로서 아버지가 품었던 열정과 가족을 향한 꿈이 촘촘한 선들로 새겨져 있었다. 남향으로 앉은 직사각형의 이 층집, 마당과 커다란 대문이 그려진 종이를 펼치며 아버지는 어린 내게 몇몇 선을 짚어 보이셨다.
“이게 날개란다.
이 집은 동쪽을 향해 날아가는 새야.”
이층 베란다에서 집 앞뒤로 길게 뻗어 나온, 이제는 낡아버린 콘크리트 구조물을 볼 때마다 나는 그날의 설계도와 아버지의 목소리를 함께 떠올린다.
막 날아오를 듯 새로 지어졌던 집과, 시간 위를 흘러 조용히 내려앉은 지금의 집이 겹쳐 보인다.
다닥다닥 붙은 방들과 바깥에 화장실이 있던 옛집에 비하면, 새집은 어린 내 눈에 거대한 대궐처럼 느껴졌다.
공사가 한창일 때면 언니들의 손을 잡고 현장을 구경 가는 길이 늘 소풍처럼 설레었다.
건축 자재가 널브러진 이층 베란다 끝, 날개가 놓일 자리 근처에 아버지가 앉아 인부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아버지를 부르며 달려가던 순간 ‘부욱’ 하는 소리가 났다. 각목에 박혀있던 대못이 내 오른쪽 발목을 훑고 지나간 것이다. 한 박자 늦게 터져 나온 울음과 함께 아버지는 나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달리셨다. 지금도 발목에 흐릿하게 남은 흉터는, 그 시절 아버지가 쏟아붓던 땀과 숨결을 불러내는 작은 표식이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우리는 그 집에 입주했다. 니스 냄새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매끄러운 마루와 둥근 나무 계단이 좋았다. 계단 옆 동쪽 창으로는 남산이 보였다. 창틀에 기대 서 있으면 정말 커다란 새의 날개 위에 올라탄 기분이 들곤 했다.
집은 그렇게 우리 가족의 시간을 한 겹씩 품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집이 기쁨만을 담아낸 것은 아니었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쓰러지셨고, 임종을 앞두고 집으로 모셔졌다. 이층 계단 난간 끝에 매달리듯 쪼그리고 앉아 내려다본 거실에는 의식을 잃은 할아버지와 오열하는 부모님이 계셨다. 어린 나는 울음을 터뜨리지도 못한 채, 가슴에 싸한 파스 한 장을 붙인 듯한 먹먹함을 느꼈다. 아버지가 평생의 꿈을 쌓아 올린 그 집에서 한 생명의 등불이 고요히 저물고 있었다.
세월은 집 위로 쉼 없이 흘렀다. 우리는 자라 집을 떠났고, 그 자리에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나 계단 난간을 미끄럼틀 삼아 놀았다. 웃음소리는 달라졌지만, 계단을 타고 흐르는 생의 기척만은 변함이 없었다.
푸른 설계도를 펼쳐 들던 아버지는 이제 증조할아버지가 되어 그 집에 머물고 계신다. 아버지는 가끔 외벽의 거친 화강암을 어루만지고, 손때로 맨질해진 오동나무 창틀을 가만히 쓰다듬으신다. 손끝으로 지나온 세월을 함께 더듬는 듯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아버지가 떠나신 뒤에도 저 날개는 여전할까.
나는 가끔 집 앞에 서서 베란다를 올려다본다. 날개처럼 뻗은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바람은 한때 그 위에 서 있던 우리들의 시간을 실어 나르는 듯하다.
우리를 세상으로 떠나보냈던 그 날개는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쩌면 날개는 집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그 품을 떠나온 우리들 마음속에도 하나씩 자라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삶 위에서 저마다의 하늘을 향해 천천히 날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