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왜 다른 걸까
어디에 숨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술래잡기를 하면 늘 장롱 속이나 소파 뒤처럼 뻔한 곳에 숨어있던 녀석이 그날따라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항복을 선언했는데도 기척이 없다.
기어이 나를 애태우겠다는 속셈이다.
필경 부엌 너머 문밖 어디쯤에 숨어있을 것 같아 문을 빼꼼 열고 나섰다. 베란다 모퉁이, 붉은 플라스틱 통 뒤로 동생의 까만 정수리가 보였다.
"찾았다!"
외치며 급히 되돌아서던 찰나,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유리문이 산산이 부서졌다. 손잡이를 잡아야 했는데, 급한 마음에 유리를 밀어버린 탓이었다.
큰 사고를 쳤다는 공포가 순식간에 밀려왔다. '또 이 비싼 유리를 깨뜨렸어! 말썽쟁이 같으니라고!' 엄마의 불호령이 환청처럼 귓가에 울렸다. 나는 옴짝달싹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달려 나온 엄마는 깨진 유리문보다 내 몸부터 먼저 살폈다. 나를 덥석 감싸 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다쳤어? 큰일 날 뻔했네. 엄마가 치울 때까지 꼼짝 말고 저기 가 있어."
세월이 흘러, 나 역시 엄마가 되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동생과 술래잡기를 하던 날이었다.
술래는 어렸지만 숨는 형은 제법 진지했다. 햇살 스며드는 베란다, 빨래 건조대 뒤에 몸을 숨기고는 숨소리까지 죽인 채 버텼다.
내 도움을 받아 동생이 외쳤다.
"못 찾겠다 꾀꼬리!"
신이 난 형은 건조대 밖으로 급히 튀어나오다 그만 건조대를 와르르 쓰러뜨렸다. 아이는 손가락이 끼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순간, 어린 시절 유리창을 깨뜨렸을 때, 나를 먼저 살피던 엄마의 모습이 번쩍 떠올랐다.
하지만 짓궂은 장난기가 먼저 튀어나왔다. 나는 아이의 아픈 손가락을 감싸 쥐어 주면서도 웃으며 무심코 툭 한마디를 던졌다.
"너, 건조대 부순 거야?"
나의 장난 섞인 그 한마디는 아들의 마음속에 두고두고 우려먹을 서운함을 심어주었다.
아이는 다 큰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그때의 기억을 문득문득 꺼내 놓곤 했다. 엄마는 내 손가락 아픈 건 보지도 않고 건조대 부쉈다고 뭐라 했다면서.
그 서운함이 떠오를 때면 '오렌지 사건'도 늘 덤으로 따라붙는다.
오렌지를 까줄 때마다 나는 늘 심지가 있는 질긴 쪽을 먹고 속살만 골라 아이 접시에 놓아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기억은 달랐다.
엄마가 늘 큰 걸 먹고 자기에게는 작은 것만 주었다고 말했다.
엄마가 내게 주었던 그 '안도감'을 나는 왜 똑같이 전해주지 못했을까.
사랑의 크기는 같았을 텐데,
기억의 무게는 달랐다.
아마도 개구쟁이 엄마를 둔 아들은,
제가 먹은 오렌지 조각이
항상 더 작았다고 기억하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